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Oct 27. 2019

변호사의 미국 시민권 신청

부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미국 투표 철이 다가오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내가 자주 다니는 법원 근처에서는 유권자 등록/부재주 투표를 종용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말을 걸어온다. "Are you a registered voter?" 


내가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니 그냥 당연히 유권자라고 가정하고 말을 거는 것이다. 뭐 나도 이제는 익숙해서 "No, I'm not eligible for voting... yet"라고 마지막 단어에 살짝 강조를 하며 여운을 남기면, 대부분은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이 "Oh, I see. Well then, have a great day!" 라며 대화를 끝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조만간 시민권을 취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특히 미국에서 변호사로 생활하다 보니 시민권자와 비 시민권자의 차이를 더 잘 알게 되며 또 느끼게 된다. 하다못해 형사 기소된 의뢰인을 상담할 때에도 이름, 주소, 기소명, 재판기일 이후에 묻는 것이 시민권 소지 여부다. 왜냐면 그에 따라 대응전략이 완전히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배심원 재판의 경우 내 의뢰인의 유무죄를 가르는 사람들은 전부 미국 시민권자(정확히는 관할지역에 등록된 유권자)들이다.


https://blog.naver.com/cj_rookie/221056980529 (미국 배심원 재판에 관하여)


내가 시민권을 신청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몇 가지 결정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아내와 같은 국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일본을 거쳐 미국에 들어올 때, 와이프는 일본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나는 조건부 영주권이 만료된 상태에서 조건부 해지 신청이 진행 중이라 이를 증빙하는 서류를 보여줬어야 했다. 다행히 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직원이 있어서 잘 넘어갔지만, 자칫하면 지연돼서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


두 번째는 미국 연방정부 취업 및 공직 진출 때문이다. 변호사 입장에서 연방정부는 참 매력적인 곳이다. 행정부는 (제한적으로) 법집행과 입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기 때문에, 당연히 변호사가 많고 대우도 좋은 편이다. 실제로 각 기관별로 변호사 직원이 수백 명이 넘는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차로 15분 거리인 근교에서 사는 나로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직은... 뭐 나중에 나이가 들면 기회가 될지도.


세 번째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여행 및 체류가 쉽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한국에 체류 후 미국에 돌아오는 게 쉽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 부모와 가족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언젠가라도 필요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부모님이 나이 들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10년이고 20년이고 한국에 있어야 하는데, 시민권자가 아니라면 그 이후에 미국에 돌아가기 위해 모든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병역의무를 마쳤기 때문에 동포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취업 및 생활하는데도 크게 지장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나고 싶은 유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최근에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범한 소시민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는 수밖에...


비슷한 맥락으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시민권 신청은 이민 변호사를 고용했다. 사실 나도 법률 자원봉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 수십 명의 시민권 신청서류를 검토해보고 도와준 적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내 영주권/시민권 서류는 전부 다른 변호사에게 맡겼다. 내가 변호사를 고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이유는,


첫째, 시민권 신청에 드는 정확한 노력과 비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호사를 고용하고 싶어도 꺼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소위 "바가지 쓸까 봐"인데, 사실 나에게 이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이민법 시장은 경쟁이 심해서 수임료가 낮은 편이데, 그에 비하면 의외로 리스크가 크고 변호사의 책임 부담이 높다. 


둘째, 누구라도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 객관적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권 신청 같은 중요한 절차에서는 무엇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적시와 평가가 필요한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우위상 내가 시민권 신청을 직접 하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다른 형사사건 하나 더 수임하는 게 시간적/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셋째, 다른 변호사의 업무 스타일과 고객 응대를 배우기 위해서다. 나도 변호사로서 수많은 의뢰인을 상대하고, 다양한 사건을 수임하다 보니 항상 '의뢰인의 입장은 어떨까?'라는 고민을 한다.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은 직접 의뢰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보니 내가 새롭게 배울 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시민권 신청을 도와줄 때 어떤 점을 추가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뭐 사실 이제 막 시작이다. 변호사님 말로는 짧게는 6개월, 평균 9개월, 길게는 14개월까지 걸린다고 했으니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되리라고 생각한다. 작은 희망이라면 내년 미국 대선 전에 절차를 마무리하고 투표를 하는 것이다. 과연 그 기대가 이루어질지...




작가의 이전글 최근 근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