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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Nov 07. 2019

지역 주민들이 인권 변호사를 검사장으로 임명하는 나라

미국 검사장 선거를 바라보는 형사 변호사의 소고

어제 버지니아 주 선거가 끝났다. 나는 아직 투표권이 없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주시하고 있었다. 바로 지역 검사장(Commonwealth Attorney) 선거 때문이다. 버지니아는 4년마다 지역 주민들이 검사장을 투표로 선발한다. 여기서 지역이라 함은 카운티(county) 혹은 시(city)를 말하며, 카운티는 우리나라 행정구역으로 치면 도(道)보다는 작고, 군(郡)보다는 크다.


올해에는 내가 살고 있는 알링턴 카운티를 비롯해서 가장 많은 사건을 진행하고 있는 인접한 페어팩스 카운티 검사장을 선출하는 해라서, 형사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나에게는 누가 검사장이 되느냐에 따라 향후 몇 년간의 업무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알링턴이나 페어팩스는 둘 다 워싱턴에 접한 북부 버지니아에 속해서 그런지 진보적 성향이 큰 지역이다. 그 말인 즉, 민주당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대부분 그래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검사장 선거의 핵심은 "누가 민주당 사전선거(primary election)에서 승리하여 본 선 거에서 민주당을 대표하는 후보로 나설 수 있느냐"이었다.


알링턴의 경우 현직 검사장은 T라는 중년의 백인 여성 검사인데, 내가 알링턴 국선 변호인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익히 들어와서 잘 아는 사람이었다. 성격은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범죄에 대해서는 경범죄 중범죄 가릴 것 없이 지나치게 강경하고 완고한 사람이라 국선 변호인 사이에서 그렇기 인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에 대항하는 도전자인 P는 국선 변호인/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내 모교인 조지타운 로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억울하게 범죄 누명을 쓴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이노센트 프로젝트(Innocent Project)"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후보와는 얼마 전에 알링턴 법원에서 있었던 변호사 교육 시간에 옆자리에 앉아서 잠깐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인권 변호사 치고는 조용하지만 차갑고 단호한 인상이었다.


사실상 민주당 사전 선거가 본 선거의 당락을 가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거 운동은 사전 선거를 목표로 이루어졌었다. 재밌는 점은 양 후보가 현직 형사 변호사(defense lawyer)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예전에 국선 변호인 사무실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에 자연스럽게 좀 더 진보적인 도전자 P후보를 지지하게 되었고, 나중에 이를 지지하는 변호사 성명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사실 이름을 올리기 전에 잠깐 고민을 하긴 했었다. 왜냐면 나중에 현직 검사장이 재선을 하게 되면 도전자를 지지했던 변호사들이 사건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관련 기사) - 참고로 기사 중간에 성명문("two-page letter") 링크가 있는데, 거기에 내 영문 이름(Asher Kim)이 포함되어있다.

https://www.arlnow.com/2019/04/26/amid-primary-campaign-defense-attorneys-sign-letter-opposing-prosecutor/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지지했던 후보가 민주당 사전 선거에서 승리했고, 이번 본 선거에서도 무리 없이 검사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동안 버지니아에서 범죄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로 유명했던 알링턴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기존의 검사장과 완전히 다른 정책과 관점을 가진 새 검사장이 업무를 시작하면, 당연히 기존의 검사들은 물갈이가 될 것이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새 검사장과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을 정도로 노선이 다른 일부 검사들은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국선 변호인 사무실에서는 대부분 공공의 적으로 취급되는 검사들이다) 요즘 형사 변호사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가, 누가 벌써 어디로 갈 것이고, 누구는 벌써 그만뒀고, 누구는 잘릴 거 같다든지 식의 잡담이다. 물론 그 목소리에는 즐거움과 가벼운 흥분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래도 그동안 당한 것들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사실 나는 이번 검사장 선거를 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일단 지역 주민의 입장으로서 보면 범죄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검사장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처벌이 느슨해지면 범죄도 늘어날 것 같다는 인과관계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일 같이 형사 사건을 대리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검사보다 여러 가지 정황과 상황을 헤아릴 줄 아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검사를 원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새 검사장이 취임할 경우, 내가 다룰 수 있는 형사 사건의 수임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 검사장은 단순 대마초 소지 사건을 기소하지 않고, 중 절도죄 기준을 상향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이제 단순 대마초 소지 사건은 수임이 되지 않을 것이고, 예전에 중 절도죄였던 사건이 이제는 경범죄로 취급되어 변호사 수임료도 적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관계를 떠나서 P후보를 지지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이곳의 형사 제도의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고, 검사장이 그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지역 주민들이 결정한 사안이다. 만약 새 검사장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른 후보를 선발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검찰 조직은 그물처럼 매우 꼼꼼하고, 선후배 관계가 철저한 수직형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조직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중의 공감과 지지를 받기가 어려운 구조다. 물론 모든 중대 결정권자가 대중의 인기에 부합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민주주의 시대에서 기소를 독점하고 있는 권력의 수장은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게 옳지 않을까? 언젠가 한국에서도 인권 변호사가 주민선거를 통해 지역 검사장, 더 나아가 검찰총장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글: 김정균 미국 변호사(VA/DC/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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