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시녀일까 검찰의 견제일까?
최근 한국에서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다. 그동안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공수처가 생김으로서 검찰 외에 기소권을 가진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있었고, 그중에 특히 공수처가 "권력의 시녀인가, 아니면 정당한 검찰의 견제 세력인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공수처법을 분석해 보고, 이에 대한 내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우선 필자는 한국 변호사가 아닌, 미국 변호사이기 때문에 한국 법을 해석하는데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그 점 양해드리고, 혹시나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1. 전제
어떤 신설 조직의 성향은 그 조직의 장에 달려 있으며, 해당 조직의 장을 어떤 방식으로 선출하느냐에 따라 해당 조직이 얼마나 중립적인지, 혹은 얼마나 정치적인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기본 전제로 분석을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포스팅에서는 공수처장의 선출 방식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2. 공수처장 후보
공수처장 후보는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에서 2명을 추천하고, 그중 1명을 대통령이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서 임명한다. (공수처법 제5조 1항) 일단 대통령이 최종 지명을 한다는 점에서 무조건 다른 장관들처럼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임명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잠시 그 생각은 접어두자.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의 구성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3.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총 7명으로 구성된다. (공수처법 제6조 2항) 그 7명의 구성원을 보면,
-법무부 장관 (1명)
-법원행정처장 (1명)
-대한변협 회장 (1명)
-여당 교섭단체 추천 (2명)
-야당 교섭단체 추천 (2명)
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이제 각 위원회 구성원의 성향을 예측해 보자. 일단 법무부 장관과 여당 추천 2명은 대통령의 성향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화시켜서 친-대통령 표가 3표라고 볼 수 있다. 나머지가 흥미롭다. 일단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중 한 명이 겸직하기 때문에 비교적 대통령의 입김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대한변협 회장도 마찬가지다. 야당 교섭단체 추천이 2명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다음에 나올 추천위원회 의결정족수 때문이다.
4.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의결정족수
공수처법 제6조 5항을 보면, 7명 중 위원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즉, 추천위원회가 대통령의 최종 지명을 받을 두 명의 선택지 후보들을 추천하려면 이에 대해 위원회 6명이 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 20대 국회 구성으로 봤을 때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는 야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다. 즉, 자유한국당에서 추천한 위원이 1명, 바른미래당에서 추천한 위원이 1명씩 공수처장 추전위원회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의결정족수가 7명 중 6명이라는 것은, 반대로 말해서 추천위원회에서 두 명만 반대의견이 있으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5. 예상 시나리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 중 한 명인 A 혹은 B를 공수처장에 임명하려고 한다. 일단 여당과 법무부 장관을 합쳐 3표는 찬성이 나올 것이다. 보수 야당(한국당) 1표는 무조건 반대일 것이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법원행정처장, 변협회장, 야당 교섭단체 중 1표만 자기네 편으로 만들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및 임명)을 무산시킬 수 있다. 그러면 친-대통령표인 3명의 추천위원회는 야당과 타협을 하려 할 것이다. 친 대통령 성향의 A와 B 중 한 명을 제외한 C를 야당이 원하는 사람으로 추천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과연 야당이 이를 받아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면 "A와 C" 혹은 "B와 C" 조합이라도 결국은 대통령이 추천된 두 후보 중 하나를 지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들러리"C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친-대통령표 3명은 야당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진짜" 두 명의 후보를 추천할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공수처장 임명 자체가 진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힘들여 공수처법을 통과시켰는데, 공수처장이 임명되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공수처는 오히려 여당에게 해가 될 수 있다.
6. 결론
결국 공수처는 보수야당 및 미디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권력(혹은 대통령)의 시녀"가 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물론 이 같은 결론을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중요한 전제가 참이 되어야 한다. 즉, 한국당이 대한변협, 법원행정처장, 바른미래당 중 1표라도 자기네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기본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그 힘이 남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번 공수처법 통과를 계기로 그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더 확립되는 시기가 왔으면 한다.
글: 김정균 미국 변호사(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