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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May 13. 2018

보고 싶은 날엔, 저녁이 없는 삶을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 삶에 쉴 틈을 주지 않기

간밤에 꿈을 꾸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지난 꿈 속에서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되 뇌였다. 잊지말자, 잊지말자. 그리고는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노트북을 펼치고 마음의 때를 벗기려는 지금 이 순간에서야, 아침의 다짐이 무색하게, 그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친구의 말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몇 가지 기억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리운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 친구와 나는 서로 밝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고작 한 두마디 주고 받았을 뿐이지만 그 말은 우리의 진심에 와 닿았다는 것, 그 말은 모두 사실이었지만 나와 내 친구를 위로해주었다는 것. 그래서, 그 말이 너무 좋아서, 너무 고마워서 ‘잊지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었는데 결국 다 잊어버렸다. 나의 잘못이다. 꿈에서 본 것이나 들은 것은 한 두시간만 지나면, 아니 몇 분만 지나면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록해놓지 않은 나의 잘못.



그립지만 보지 못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아서, 아침에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보지 못하는’ 이라니,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보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일 뿐.



“지난 몇 년간 나를 배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툭툭 던진 너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었어. 상처받은 건 나인데 오히려 네가 더 화를 내거나 당당했던 적이 많아 정말 내가 잘못한 건가? 고민도 많이 했었고. 늘 내가 먼저 사과했었지.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실수를 한 건 너고, 되레 사과한 내 자신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곪아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혹시 나의 말을 듣고 해명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해줘.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나 이유가 있었다면 들어보고 싶어. 하지만 지금 내 말에 되레 화가 나고 어이가 없다면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성격인 듯 하니 이쯤해서 그만 보는 게 어떨까? 외로운 게 싫어 비참함을 견디고 싶지는 않아. 1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고민하다 어렵게 말 꺼내본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 어떤 성격, 어떤 말투 때문에 상처 받았다는 건지 알 것 같아.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상황들, 그 때 내가 했던 말들 내가 잘못한 거 맞아. 내 딴엔 너를 위해 한 말들이었는데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해. 하지만 이건 내 성격이고, 난 변할 수 없고, 변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앞으로도 너와 잘 지내고 싶지만 너는 이런 나를 견딜 수 없을 테니 이제 그만 보자.”



매사에 간단명료한 그녀와의 오랜 친분은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나의 오랜 고민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오랜 시간들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표현을 고치고 또 고친, 그녀가 없는 내 생활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 시간들이었다. 결코 쓸모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긴 시간, 내 모든 삶을 통틀어 무수히 반복되었던 서운함과 속앓이, 아픔과 상처, 슬픔과 분노, 이별과 그 후유증들이 그녀와 나의 마지막 대화에, 단어 하나하나에 옹골지게 박혀 우리 관계에 성숙한 마침표를 찍게 해주었음을 느꼈다. 그간의 이별들이 뒤늦게 이해되는 대화였다. 나도 내 마음을 몰랐고, 그렇기 때문에 적절히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화를 내거나 아무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연습과 각오를 해도 때때로 그리운 순간이, 보고 싶은 날이 온다는 것도 안다. 이런 무수한 상념들의 무차별적 공격에 대비한 나만의 처방전은 이미 준비해놓았다.


나는 삶에서 저녁을 없앴다. 많은 일을 벌여놓고 거의 쉬지 않고 일한다. 쉴 때는 눈을 감고 잠을 잘 때 뿐이다. 물론, 오늘처럼 자고 있을 때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저녁이 없는 삶’은 '보고싶은 날'에 ‘그리움’이라는 통증을 완화시키는 매우 좋은 진통제다.

한동안 쭉 이렇게 지낼 것 같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지속될지, 누군가 나를 구해줄지, 이 삶 자체가 나에겐 구원이었는지, 는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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