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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Nov 12. 2017

혼자 먹는 밥

"밥은 먹고 다니니?"

어렸을 때 어린이책 세일즈를 하던 엄마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어오면 내 마음은 그리 서글퍼졌다.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왜 집에 와 혼자 밥을 먹는가...... 그것도 끼니 때를 훨씬 넘겨서......



대충 상을 차려 밥을 먹는 엄마는 퀭한 눈으로 허공의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했고, 어린 내 눈에 그 표정은 너무도 가여워보였다.



아마 그랬을 거다. 엄마는 돈이 없거나(또는 있어도 조금이라도 아끼려했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쳤거나, 아예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끼지도 못했거나, 셋 중의 하나.



매일 아침 그 어딘가로 출근을 해도 매달 실적이 부족해

'좋은 책이니 미리 사두면 나중에 우리 손주들이 볼거야(그 때 첫째인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하며 사들인 책들이 어느새 창고에 한가득 쌓이고,

"돈 없다고 애들 책값 아끼지 말고 일단 사서 읽혀요. 우선 돈은 내가 낼게요(우리집은 다달이 카드 돌려막기하며 살던 집이었다.)."

하며 선결제 한 돈들을 끝내 돌려받지 못했던 엄마의 영업 수완으로 미루어보아 위의 세가지 추측은 충분히 타당했고, 가능했다.

경쟁이 치열한 그 영업의 세계에서 우리 엄마같은 미련하고 순진한 곰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했다.



'혼밥'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엄마의 진보적인 혼밥 모습은 결코 멋져보이지 않았다. 어린 나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을 몰랐던지라 엄마를 가엾게 여긴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만 애썼던 게 생각난다.



세월이 흘러 나도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고, 혼자 밥을 먹는 이유는 어렸을 때 엄마를 보며 짐작했던 이유와 놀랍도록 똑같았다.



밖에서 사먹기에, 또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밥을 먹기에 돈이 없거나.

사람들 속에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거나, 가식적인 웃음을 띄며 맞장구를 쳐주거나, 어색한 침묵이 싫어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는 것에 지쳐서.

아예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배는 고프고 밥은 먹어야해서 혼자 밥을 먹었다.



"밥은 먹고 다니니?"

"왜 이 시간에 밥을 먹어?아까 밥 못 먹었어?"

언젠가부터 내가 안에서든, 밖에서든 혼자 밥을 먹고 다닌다는 것을 눈치챈 엄마가 가끔씩 묻는다.


내 입장에서는 그냥저냥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보는 엄마 마음은 저릿저릿할 것이다.



혼밥이란 단어가 뉴스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대세이고, 트렌드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혼자 밥을 먹는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당당하고 멋지게 느껴지지 않는다.



술은 집에서도 즐겨 혼자 마시지만, 고기는 아직 도전해보지 않았고, 밥은 끼니 때 이전이나 이후 시간대를 선호하는 편이다. 옷차림이 후줄근할 때는 너무 편안해서, 번듯할 때는 너무 괜찮아서 되레 주변 사람이 신경 쓰였다. 혼자 먹으니 편하게 입고 가면 너무 불쌍하게 보는 것 같고, 그렇다고 차려입고 나가면 대체 저렇게 입고 왜 혼자 먹나? 대놓고 힐끔힐끔 보는 시선이 많았다.

혼밥이 아무리 핫이슈래도 아직까진 모든 세대와 연령층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 같다.

혼밥을 즐기는 나도 어딘가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한두번은 눈길이 더 가는 것이 사실이다.




오래전, 취업 준비생 시절,

오후 3시 다 되어 늦은 점심으로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갔었다. 홀안에 아무도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낡고 허름한 옷차림의 아저씨가 땀 흘리고 지친 얼굴로 들어와 국밥을 주문하고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허기진 표정, 급히 움직이는 숟가락, 때에 절은 낡은 작업복과 신발을 보니 괜시리 코끝이 시큰거렸다.

'나 따위가 뭐라고 다른 사람 밥먹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동정한단 말인가?'

애써 눈물을 감추는데 이번엔 단정하게 잘 차려입은 노신사가 들어와 점잖게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할아버지의 국밥 먹는 모습은 더할나위 없이 품위 있었다. 내가 먹는 콩나물국밥까지 그분 덕에 덩달아 품격이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각자 자기 돈 내고(그 돈을 어떻게 벌었든), 같은 가격에 같은 메뉴의 음식을 먹는데 왜 이리 다른 느낌이란 말인가...... 어차피 모두 배 고파서 먹는 밥이고, 분명 각자의 가족이나 친구가 있을테지만 그저 '지금' 혼자 있어서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뿐인데.


어쩌면 노신사는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혈혈단신 진짜 혼자였을 수 있고, 그 아저씨는 밤마다 술잔을 기울일 마음맞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 두 사람은 연이은 취직 시험 낙방으로 기운이 빠져 눈물,콧물 훌쩍이며 밥 먹던 나를 보고

'참 좋을 때다!'

했을 수도 있다.





혼자 밥을 먹으며 처량해지거나

혼자 밥 먹는 이를 보며 처연함을 느낄 때마다

꼭,

오래전의 엄마와 그 아저씨와 노신사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나를 생각한다.


밥 앞에서는 모두 편안히, 내 본연의 모습으로, 진솔하고 정직하게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니 다른 이의 민낯을 보고 놀라지말 것.

그이의 민낯은 나의 민낯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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