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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Oct 04. 2018

10. 그 음악을 틀어줘 DJ

나 혼자 엄청 신경 쓰고 심각한 DJ놀이

언젠가 영화와 관련된 가게를 하게 되면 하루 종일 영화음악으로만 채워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런 곳이 없다는 점과 내가 선곡한 영화 음악들로만 공간을 채운다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 아마도 느끼게 될 만족감 때문에 그렇게 다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영화로만 채워진 가게를 열게 되었고 꿈꿔왔던 대로 문을 여는 순간부터 닫을 때까지 영화 음악으로만 채워진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남들은 거의 신경을 안 쓰거나 느끼지 조차 못하는 수준일 것 같지만, 이게 나 혼자는 엄청 심각하고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하루의 음악을 어떤 것들로 선곡할지, 어떤 순서로 선곡할지, 시간과 분위기에 따라 어떤 음악을 선곡할지 하는 것 말이다. 그냥 적당한 곡들을 플레이리스트에 가득 담아놓고 한 번 플레이시키고 마는 것 같지만, 결코 아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들을 주로 선곡한다. 하물며 가게 이름도 마이 페이보릿인데, 이거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는 사람들이 익숙하게 알만한 곡들도 여럿 선곡한다. 이건 가게 위치를 특별 감안한 부분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영화 마니아들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일반 관광객들이 (아직까지는) 지나가다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에 훨씬 더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곡들을 특별히 선곡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곡을 틀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곡들을 다시 선별하는 편.


그리고 시간에 따라 가끔 덜 대중적이지만 내가 특별히 좋아하거나 듣고 싶은 영화음악들도 선곡한다. 주로 익숙하지 않거나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스코어 음반일 경우가 그런데, 가게에 아무도 없거나 가게 안에 있는 손님들의 경향을 살핀 뒤 무리가 없다 판단되면 틀곤 한다. 그 판단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만으로도 복잡해질 수 있어 이만 줄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혼자만의 감과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음악은 주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와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트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제일 다양한 곡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인데, 중간중간 스피커 충전을 위해 위치를 옮기거나 다른 플레이어를 사용하곤 한다. 가게에 오는 많은 손님들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와, 이거 스피커 되게 좋다' '출력이 엄청 좋네' 등등 이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칭찬하는 말들인데, 재미있는 건 이 스피커는 내가 인터넷을 신규로 계약하면서 보너스로 받은 일종의 번들 제품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실 이 스피커를 계속 사용할 생각도 없었고 남들이 다 알만한 브랜드의 그럴싸한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려고 했었는데, 많은 분들의 격려(?) 덕에 그냥 교체 없이 계속 사용하는 중이다.


저 작은 스피커의 성능이 아주 칭찬할 만하다


그 외에는 주로 턴테이블을 이용해 LP판을 튼다. 그동안 집에서 묵혀 두었던 영화음악 LP들과 최근에 가게를 열고 구매한 신보들을 적절히 섞는 편인데, 확실히 반응이 좋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신기한 눈으로 턴테이블을 구경할 때가 많고, 간혹 이 기계가 생소한 아이를 위해 틀어봐 달라고 부탁하는 어른분들도 계신다. 가끔은 뽐뿌를 위해 일부러 LP를 틀기도 한다. 우리 가게에 가장 잘 맞는 플레이어가 턴테이블이기도 하고.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내가 더 많은 LP를 계속 사야 한다는 점 정도다.


싱스트리트 LP는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다


그리고 가끔은 카세트테이프도 튼다. 이것도 몇 번 시연해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했는데, 가끔 턴테이블이 쉬는 시간에 틀곤 한다. 


카세트테이프도 가끔 튼다


아, 그리고 플레이어와 상관없이 내가 DJ노릇을 하며 가장 신경 쓰는 건 손님들의 반응이다. 가게에 들어왔을 때 어떤 영화 엽서나 LP 커버를 보며 '나 이 영화 너무 좋아' '이 영화 노래가 끝내줘' 등등 대화를 나눌 때가 많은데, 그럴 때면 나는 손님이 눈치 못 채게 지금 흐르는 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음 곡에 자연스럽게 그 영화 음악을 오버랩시킨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바로 반응이 온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반응을 모니터링하며 적당한 곡을 틀기도 하고, 앞서 언급했던 나만의 감을 동원해 이 손님들은 이런 음악을 좋아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한 뒤 역시 적당한 곡을 일부러 선곡하곤 하는데, 이것도 반응을 보면 확률이 꽤 높은 편이다. 아이들이 많이 들어왔을 땐 디즈니 애니메이션 곡을 자주 트는 편이다. '모아나'나 '코코' 주제곡은 요새 반응이 아주 좋다. 


이렇게 남들은 잘 모르지만 (몰라도 돼지만), 나는 하루 종일 가게를 보는 것 외에도 DJ일로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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