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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Oct 30. 2018

15. 그래, 모두가 영화를 사랑하진 않지

하루하루 더 대중과 가까워져(?) 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상업적인 면을 최대한 덜 고려하면서 최대한 취향을 밀어붙여 가게를 열고 운영한 결과, 우리 가게는 극과 극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곳이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거의 대부분 환호성을 지르며 입장하는 반면, 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관광객들은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가게 앞을 지나치거나 아주 잠시 들어왔다가 도망치듯 바로 나가는 일이 많은 그런 곳. 


그렇게 또 평소처럼 가게를 운영하던 어느 날, 손님들의 대화를 듣던 중 나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한 마디를 듣게 되었다. 젊은 여성 두 분이 이것저것 가게 내 아이템들을 구경하며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한 분이 '와, 이쁘다, 이거 이쁘지?' '응, 진짜 예쁘다', '그럼 하나 사'라고 하자 그분의 대답이 충격이었는데.


'사고 싶은데 필요가 없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른 의미로 나는 '아, 이거구나' 싶었다. 가격대가 높은 제품이야 정말 애정도가 높지 않으면 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장의 천 원 하는 엽서에 환호하면서도 결코 잘 사지 않는 이유를 솔직히 알지 못했었는데, 이 말을 듣고 나니 아, 이거구나 싶었다. 필요가 없는 것은 사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비슷한 대화를 들었던 것 같다. 한 분이 엽서가 예쁘다며 산다고 하자 같이 온 분이 '너 엽서 사게? 왜? 엽서 쓸데 있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엽서를 사면서 오히려 그 본연의 기능으로 인해 사본적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동시에,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은 엽서를 예쁘다고 사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쓸 일이 있을 때, 즉 그 주기능을 쓸 데가 있을 때 구매를 결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게는 많은 분들이 대부분 예쁘다, 멋지다를 연신 내뱉지만 그중에 실제로 구매를 하는 분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도 바로, 대부분 예쁘지만 직접적인 필요는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인 것을 뒤늦게서야 완전히 알게 되었다.(결국엔..)


그런 기준에서 보니 이해가 되는 일들이 갑자기 막 떠올랐다. 한 번은 손님이 피규어를 가져와서는 '이거 움직이는 거예요?' '이거 조립하는 거예요?'라고 물으신 적이 있는데, '아니요'라고 답했더니 '그럼 뭐 하는 거예요?'라고 물어서 적잖이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 그냥 보는 건데요'라고 밖에는 할 수 없었는데, 그분의 입장에서는 '그럴 거면 왜 사지?'라는 역으로 당황한 표정이셨다. 이때만 해도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순간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진심으로.


그러고 보니 (오늘 글의 주인공은 '그러고 보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나 집단에서 살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테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해 같이 일하는 동료와 한참을 얘기할 수 있는 회사, 아니면 어제 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해 한참을 토론에 가깝게 얘기도 해볼 수 있는 동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곁에 존재했던 것 같다. 달리 보자면 나는 항상 영화와 음악이 없어도 무방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꼭 필요한 삶과 공간에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러고 보니에서 변형을 살짝 주었다) 요즘 겪는 상황들이 당황스럽고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이해도도 높아진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더라도 더 잘 팔릴 것들을 모아서 판매하면 돈은 지금보다 더 벌겠지만 내가 본래 하려던 '마이 페이보릿'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어느 정도 취향과 대중성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겠지만, 따지 보고면 이 경우엔 '균형'이라는 말 자체에 모순이 있지 않나. 하지만 오랜 회사 생활을 하며 현실적인 면에 많은 것들을 타협해야만 했던, 몸이 기억하는 본능들이 계속해서 더 장사가 잘되는 방향을 강요한다. 그렇게 몸이 이끄는 대로 하면 살림살이가 더 나아지기는 할까? 그럴 거면 회사를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오늘도 이렇게 한적한 가게에서 나는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이제 겨우 두 달 차인데 더 오랜 기간 겪고 고민해야 할 장사의 고민을 아주 집약적으로 짧은 시간에 겪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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