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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Nov 11. 2018

17. 살아있는 생물 다루듯

매일매일 작지만 다르게

어렸을 때 남들처럼 막연하게 슈퍼마켓이나 장난감 가게, 음반 가게 사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그런 꿈을 꾸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작 가게를 하게 되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의식은 있었지만 가게 운영이 과연 나와 잘 맞을까 조금은 의심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막 두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제법 잘 맞는 듯하다. 아니, 꽤 재미있다.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일들 말고, 한 편으론 안 해도 되는 일들 하지만 하면 달라지는 소소한 일들이 있는데, 그런 일들이 재미있다. 이를테면, 판매 아이템의 위치를 바꿔본 뒤 손님들의 반응이나 판매량을 지켜보는 일이다. 실제로 어떤 아이템은 잘 팔렸었는데 위치를 살짝 바꾸고 나니 전혀 판매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단순히 주목받을 만한 위치인가 아닌가에 따르기보다는, 어떤 성격을 띠는 아이템들과 함께 혹은 주변에 놓이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미세하지만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이 작은 공간에서도 그런 차이점이 생긴다는 것이 재밌다. 손님들은 눈치 못 챌지 모르지만 일종의 큐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떤 아이템을 중심으로 그 아이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성격의 것들을 근처에 두면 아무래도 좀 더 관심을 끌고 구매로도 연결이 잘 되는 편이다. 그리고 약간의 잔머리이기는 하지만 전시하는 숫자를 일부러 비어 보이게 해서 계속 판매가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거나, 노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역발상으로 마치 일부러 숨겨 놓은 듯한 구석진 곳에 놓은 아이템이 더 팔리기도 한다. 이건 약간 심리적인 건데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멀쩡히 전시되어 있는 곳 외에 아래 공간이나 신경 덜 쓴 보관 공간을 일부러 찾아보는 손님들이 많다. 이런 곳에 숨겨진 보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일 것 같은데,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우리 가게는 그런 식으로 배치해두고 있지 않아서 잘 노출되어 전시되는 제품들이 제일 보물 같은 아이템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살아있는 생물 다루듯이 하루하루 작은 공간에 변화를 미세하게 주고 있다. 위치를 바꾸거나, 작은 소개 문구를 적어 붙여보거나, 손님들 동선을 고려해 변화를 줘본다거나 하는 일들. 그리고는 깨알 같이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반응이 올 땐 확실히 운영하는 맛이 난다. 


오늘도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작은 변화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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