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쉬타카 Nov 29. 2015

5. 윗집에 층간소음이 산다

도대체 우리 윗집은 무얼 하는 걸까

난 몹시 예민한 사람이다. 작은 불빛이 있어도 잘 못 자고, 엠티나 워크숍처럼 밖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잘 일이 있을 때도 가장 늦게 자서 가장 빨리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고, 슈퍼 히어로의 능력 정도는 아니지만 작은 소리들에 아주 민감해서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도 아주 잘 들리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층간 소음은 참 견디기 힘든 고역이다. 층간 소음에 대한 내 반응을 이야기하기 전에 전혀 다른 내 성향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데, 그건 바로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는 스타일에 대한 것이다. 난 어지간하면, 아니 간혹 어지간한 일이 아니더라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음식물에 무언가가 들어 있더라도 그냥 빼고 마는 편이지 주인에게 항의하거나 신고하겠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고, 물건을 살 때도 남들이 대부분 쉽게 가격을 깎는 경우도 주인이 먼저 깎아주지 않는 한 그냥 그대로 사는 편이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무례한 일을 겪더라도 크게 다치거나 하지 않으면 '에휴, 왜 저러고 사나' 생각하고 그냥 마는 편이다. 그러니까 만사에 그냥 사람들과 좋지 않은 일로 부딪히는 것을 내가 감수하는 것으로  최소화하려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층간 소음이란 어떤 것인가. 몇 해 전 홍대 근처 반지하에 살 때 층간 소음을 겪었던 일이 있었다. 저런 성격상 어지간한 층간 소음은 그냥 넘기려고 했었다. 그냥 며칠 저러다 말겠지. 조금만 참아보면 그만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참는 편이었다. 참고로 나는 이 참는 기간이 남들 보다 훨씬 길다고 보면 된다. 하루 이틀, 일주일 정도가 아니라 보통 한 달은 기다려보자 라던지 몇 달만 참아보자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반지하에서의 층간 소음은 한참을 계속되었고 그 지속된 기간도 기간이지만 무엇보다 그 충격의 세기가 강했다. 그냥 위층에서 누가 뛰는 정도가 아니라 집 전체가 울리는 정도라 그냥 오래 참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그래서 며칠을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큰 맘먹고 위층에 올라가 문을 두드렸는데, 알고 보니 이 층간 소음은 위층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옆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모델 에이전시 연습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연습실에서는 매일 저녁부터 밤까지 연습을 하느라 클럽 음악을 크게 틀어 놨었는데, 이 진동이 옆 건물의 반지하에까지  전달된 것이었다. 정말 거의 처음 큰 맘먹고 얘기하려고 올라간 것이었기 때문에 이렇든 저렇든 결정이 되길 바랬었는데,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니 허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 뒤 현재. 몇 달 전부터 윗집에서 층간 소음이 시작되었다. 보통 층간 소음은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아이들이 내는 소음 수준이 아니었다. 참고로 나는 앞서 설명한 성격상 층간 소음이 발생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 패턴 등을 분석하는 등 나름대로의 결론을 먼저 내는 편이데, 대낮  시간뿐만 아니라 12시, 1시가 넘는 늦은 밤과 새벽시간에 까지 엄청난 진동이 발생하는 걸 보면 이건  어린아이들이 내는 걸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몇 달 전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퇴근 이후에 발생하는 층간 소음만 견디면 됐는데, 얼마  전부터 낮 시간에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좀 더 이 층간 소음에 대해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주로 발생하는 시간대가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고, 특히 늦은 밤과 새벽시간에 강한 진동이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자 가장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다. 


아마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위층에 올라가도 벌써 올라갔을 텐데 나는 아직도 조금 참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금 다른 이유도 있다. 사실 요 몇 달 전달된 층간 소음의 수준은 나 같은 사람도 이미 분석(?)과 인내를 마치고 올라가 벨을 누를 만한 수준이 분명한데, 그렇게 층간 소음을 분석해 보니 이건 좀 성격이 다를 수도 있다는 예상 때문에 쉽게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분명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뭐랄까, 위층이 단순한 가정집이 아니라 연쇄 살인범이 살고 있다거나 혹은 어떤 불법적인 작업을 하는 일종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한 번 의심하고 나니, 이 집을 처음 계약할 때 집주인의 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는데, 원래는 매매로만 팔려고 했던 걸 급하게 월세로 내놓았다는 말이 '아, 윗집 때문에 결국 정신없이 도망가는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난 층간 소음은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 교육을 잘 못 시켜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좀  뛰어다닌다고  아랫집에 크게 소음을 느낄 수준으로 아파트를 만든 쪽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로 인한 층간 소음이 문제라면 항의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닐뿐더러, 내 성격상 이걸 이유로는 왠지 정당하지 못한 항의이기 때문에 역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윗집은 아이들이 뛰어서 내는 층간 소음이 아니다. 일부러 뒤꿈치로만 골라서 쿵쿵 뛰지 않는 이상 저런 소리가 날까 싶은 진동들과 안방과 거실, 베란다를 빠르게 오가며 베란다 미닫이 문을 빠르게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패턴은 무언가 어떤 작업을 하는 걸로 보인다. 그것도 아주 늦은 시간에. 


도대체 우리 윗집은 무얼 하는 걸까. 그냥 단순히 새벽에도 안 자는 아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뛰어노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무언가 어른들이 이상한 작업들을 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단. 나는 과연 이 문제를 들고 윗집을 올라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전에 이사 가는 편을 택할까? 이게 더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8 새우가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