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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un 12. 2019

57. 서울에서 만나요

무슨 84년 올림픽 폐막식 인사말 같네 ㅎ

가게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 및 예상 혹은 예언을 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여러 차례 말했던 것처럼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가고 있어서 스스로도 조금씩 놀라고 있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단점들이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닥친 일들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지만.


하지만 그 가운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사건들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또 다른 샵에 입점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장사가 잘돼서 분점이나 가게를 확장하는 꿈은 (이건 아직 계획이 아니다) 꿔본 적이 있지만 우리가 또 다른 편집샵에 입점한다는 건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자체가 일종의 편집샵이기 때문에 또 다른 편집샵에 입점한다는 건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떠나서 불가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스트롤 벽면 한 켠을 가득 채운 우리 바이닐들. 아, 절반은 다른 곳의 제품이다


편집샵 형태를 해본 이들이라면 아마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직접 제작하는 제조업에 비해 이미 다른 브랜드가 제작했거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제품을 입점해 수수료 베이스로 판매하는 편집샵의 수익구조는 몹시 협소한 편이다. 마진 구조가 좋지 못한 것을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꾸준한 판매로 커버하며 아주 조금씩 확장을 꿈꿔볼 수 있는 것이 편집샵의 구조인데, 이런 마진 구조를 가지고 또 다른 편집샵에 입점한다는 건 추가적인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한 제안을 해 온 회사가 올해 초 한 곳 있었다. 광고, 마케팅 업계에서는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표님이 새롭게 시작하는 오프라인 스토어였는데, 평소 이 분이 하는 신규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아주 살짝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프로젝트고 더군다나 우리에게 제안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솔직히 몹시 기쁘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게 가능한가? 하는 심정이었다. 우리도 하고는 싶지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가오픈 전까지 몇 달간 전화와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정확히 어떤 스토어인지 나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스트롤 측에서도 서로 가능한 선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 아, 이곳의 이름은 '스트롤(STROL)'이다. 수원 광교에 위치한 앨리웨이라는 복합 문화공간 내에 새롭게 문을 연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이다. 일단 내가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며 이해한 바는 스트롤은 당장의 수익구조를 먼저 생각하기 이전에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물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는 말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우리 같은 샵도 입점할 수 있는 여지가 역시 있었던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입점한 다른 브랜드들 가운데서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편집샵, 셀렉샵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확실히 느끼는 장점은, 한 공간에 어떤 취향이나 테마를 중심으로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더 큰 의미와 매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우리만 해도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아이템들도 물론 많지만 솔직히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들도 있는데, 이렇게 오프라인 공간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그것도 같은 주제의 다른 제품들과 함께 모여있는 걸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보니 모두들 우리만 독점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오해할 때가 많다. 이미 수년 전부터의 흐름이지만 큐레이션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는 부분이다. 거기에 더 개인적이고 마니아적인 취향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시장도 작게나마 생겨나고 있고.



그런 과정을 거쳐 지난 5월부터 광교 스트롤에서 마이페이보릿의 제품들을 일부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나도 아직 가보질 못해 실제 스트롤 전체 공간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작더라도 우리에겐 제법 큰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다. 일단 군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다수가 수도권이라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다른 접근성을 갖게 되었다는 장점이 있고, 같은 의미로 다른 루트로 소비자들과 첫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솔직히 스트롤에 제품을 입점하기로 하면서도 직접적인 판매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지난주 처음 받아본 정산 내역을 보니 금액의 크기와는 별개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많은 금액이라 마치 보너스를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들과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들이 더해진다면 앞으로도 좀 더 긍정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수원 광교에서 만나요'지만 지방에 살다 보니 수도권은 다 똑같이 서울이더라 ㅎ 

'서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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