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많고 사랑스러운 가족 히어로 드라마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 (The Umbrella Academy)'의 첫 느낌은 그저 그랬다. 첫 느낌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주 처음엔 몹시 기대가 컸던 드라마였다. 엘렌 페이지가 주연을 맡았고 조금은 괴짜스러운 만화 원작의 히어로물이라는 콘셉트를 보았을 때 딱 취향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즌 1을 모두 감상하고 나서는, 아니 감상하면서는 이런 기대감이 조금씩 실망으로 바뀌어갔다. 조금씩 흥미를 잃어가는 걸 엘렌 페이지에 대한 의리로 마무리에 성공했달까. 여러 가지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들이 있었지만 모두 다 살아나지 못한 인상이 짙었다. 특히 가장 아쉬웠던 건 시청자에겐 아직 다 와 닿지 않았는데, 드라마 스스로가 '우린 이렇게 쿨해, 이것 봐~'라며 훨씬 앞서 도취에 빠진 것 같은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이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 감흥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는데, 작품 스스로가 흠뻑 빠져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렇게 시즌 1을 살짝 꾸역꾸역 마무리하고 시즌 2를 보게 되었는데, 역으로 말하자면 시즌 1을 꾸역꾸역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엄브렐러 아카데미'만의 묘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같이 넷플릭스 등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작품들을 아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굳이 별로 인 작품을 참아가며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을 억지로 본 것처럼 했지만, 사실 무언가 가능성과 매력을 엿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즌 2는 확실히 시즌 1에 비해서 이야기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개연성 역시 많이 나아졌으며, 무엇보다 시즌 1을 통해 충분히 소개한 캐릭터들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시즌 1을 떠올려 보면 분명 커다란 줄기의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보는 내내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갈등에 몰입이 되지 않는 경우였다면, 시즌 2의 이야기는 시간대를 달리하고 시간 여행 등 아주 살짝 복잡해였음에도 오히려 더 단순하게 따라갈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물론 시즌 2 역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설정이나 캐릭터들과 개연성이 부족한 전개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구성하고 있는 이 일곱 명의 남매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매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의 교류다. 서로를 몇 호로 부르는 것이 더 익숙했던 이들이 혈연으로 이어진 남매들보다도 더 진한 유대감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시즌 2의 전개는, 예상치 못했던 감동을 준다. 그저 형식적인 울타리로써의 가족 공동체처럼 보이는 이들이 순간순간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들보다도 더 강한 유대감을 통해 '가족'임을 강조하는 장면들은, 뻔하지 않은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맥락과 개연성을 뛰어넘는 행동을 펼치며 가족임을 강조할 때 보통 같았으면 오히려 매력을 덜하게 되는 포인트가 되었을 텐데,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전혀 다른 감동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모두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의 유대는 동정이 들기보다는 사랑스러움이 더 느껴진다. 이 말도 안 되는 캐릭터들의 행동들이 사랑스러움으로 느껴지는 순간,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진짜 매력적인 드라마가 된다. 시즌 3을 예고하고 있는 시즌 2의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아마 이 '사랑스러운' 감정이 없었다면 새 시즌에는 이야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겠구나 싶어 걱정이 더 들었겠지만, 사랑스러움이 충만한 현재로서는 산이든 바다든 이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어디로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장르적으로 보았을 때 아직 더 심각하게 파해 쳐볼 문제들이 여럿 남아있다는 점도 시즌 3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 사랑스러움이 완성도 높은 심각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순간 그 감동을 더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