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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Dec 07. 2015

9. 두 얼굴의 사나이

두 얼굴이 하나 될까 두려워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얘기는 누구나(?) 자주 하는 얘기인데, 나도 그렇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최근의 나는 딱 두 사람의 나로 나뉜다. 하나는 친구, 동료, 남 등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등장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철저하게 여자친구 아니 아내와 함께 일 때 등장하는 사람이다. 


뭐 흔히들 애인이 있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남자 친구 앞에서는 목소리도 그렇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들 자주 얘기하는데, 나도 결과적으로는 그렇지만 그 달라짐의 종류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단 발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확히 다른 두 사람이라고 아마 소리 전문교수님이 분석할지도 모를 정도로 완전히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대로 나름 점잖고, 예의 바르고 없어 보이는 이미지는 아닌데, 또 다른 나는 정반대다. 다시 말해 앞서 예로 든 여자들의 경우처럼 애교가 넘친다거나 귀여운 목소리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좀 이상한 목소리로 변한다.


이상하다 못해 괴상한 소리로 대답하거나 응답하라 1988의 김성균  못지않게 아재 개그 수준을 넘어선 개그를 아주 짧은 호흡으로 자주 내뱉으며, 방 안에서 움직일 때도 아무 소리 없이 그냥 깨끗하게(?) 움직이는 일이 없이 무언가의 소리를 동반해야만 움직이곤 한다. 


사실 이런 또 다른 내가 생겨난 것은 제법  오래된 것 같은데, 이게 요새 들어서야 문제로 조금씩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이유가 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무래도 여자친구보다 회사 동료나 다른 사람들과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사회화된 정상적인 이미지의 내가 활동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더더군다나 여자친구를 만나더라도 밖에서 주로 만났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참고로 밖에서는 주변을 의식하기 때문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회사를 관두고 집에서 주로 활동하게 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은둔형 생활을 즐기다 보니 아내 말고는 다른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게 된 것이다.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다 보니 정상적인 이미지의 내가 활동할 기회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최근엔 내가 무슨 말을 내뱉거나 괴상하게 대답하는 순간을 볼 때마다 스스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내가 언제부터 이랬지' '내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문득 두려워졌다. 점점 이렇게 되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도 이상하게 말하는 거 아닐까.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의성어로 답하고, 썰렁한 개그들을 퍼붓게 될 내 모습을 생각하니 끔찍함마저 들었다. 


사회화된 내가 영영 사라지기 전에 이 망각의 늪에서 얼른 꺼내야 한다. 아마 이런 얘기를 하면 '뭐 그래도 괜찮아'하겠지만 절대 괜찮지 않을 것이다. 이건 결혼을 전제로 한 사랑의 힘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주변 사람들을 좀  만나야겠다. 이런 괴상한 나는 집에서 만으로 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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