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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Dec 14. 2015

10. 기억을 잃다

그것도 엄청 행복했던 기억을...

나는 남들보다 기억력이 매우 좋은 편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가 아니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까지 대부분 기억할 정도로, 중요한 것부터 소소한 것들까지 많이 기억하는 편이다. 내 주변 사람들한테 팁을 주는 동시에 내가  그동안 했던 거짓말을 하나 폭로하자면, 무슨 일을 두고 내가 기억이 안 난다 라고 했었던 건 99% 거짓말이 확률이 높다. 기억이 안 나서 라기 보다는 안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라 그렇게 얘기했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 썼으니 이제는 이런 핑계는 쉽게 못 대겠지.


어제는 내가 좋아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테마곡들을 재즈로 편곡하여 앨범을 발표했던 카즈미 타테이시 트리오의 내한 공연을 다녀왔다. 공연은 정말 좋았고, 무엇보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공연을 보는 중간에도 그렇고 다 보고 나서도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와, 커버한 이들의 공연도 이렇게 좋은데 히사이시 조의 공연을 직접 보면 어떨까. 죽기 전에는 일본에 가서라도 꼭 봐야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자 아내가 '우리 히사이시 조 공연 봤었잖아, 네가 보여 준 공연 중에 제일 감동적인 공연이었는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 그랬나?'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공연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좋아하는 것, 공연 등에는 돈을 비교적 아끼지 않는 편이라 좋아하는 뮤지션의 내한 공연은 돈 걱정은 나중으로 하고 많이 관람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들 공연에 대한 기억은 앞서 이야기했던 중요한 기억 중 하나로 분류되어  그때의 감정과 행복감까지 기록에 가깝게 기억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도 아마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을 히사이시 조 공연에 대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건 스스로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터널 선샤인'의 라쿠나 같은 회사에 가서 '히사이시 조 공연 기억을 지워주세요'라고 요청이라도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다른 아픈 기억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모스트 행복한 기억을 지워달라 했을까. 정말 놀랍게도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국 다시 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수 밖에는 없겠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



* 참고로 기억엔 없지만 내가 남긴 기록엔 멀쩡히 있다.

http://realfolkblues.co.kr/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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