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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Nov 10. 2020

90.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나도 갖고 싶어!

대형 포스터를 판넬로 제작, 판매를 시작하게 되면서 매장 내에도 전시할 겸 엄선한 포스터 몇 점을 대형 액자형 판넬로 제작했더랬다. 다른 얘기지만 매장에 전시할 판넬로 어떤 영화 포스터를 제작할 것인지를 두고 나 혼자 엄청 고민이 많았었다. 이것도 만들고 싶고, 저것도 만들고 싶고, 이건 판넬로 전시하면 정말 멋질 것 같고, 이건 우리 가게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작품이라 꼭 만들어야 하고, 이건 정말 많은 분들이 찾는 영화라 이걸 전시해야 좋을 것 같고 등등. 수많은 이유들에 비해 매장에 전시할 판넬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5~6가지 정도의 작품을 추리는데 홀로 고민이 많았었다. 


그렇게 선정된 영화 포스터 가운데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의 대형 포스터도 있었다. 우리가 판매하는 포스터들 가운데 가장 큰 사이즈가 극장용 대형 사이즈인데, 이 포스터는 그중에서도 가로형으로 좀 더 큰 사이즈라 우리가 판매하는 포스터 중 가장 큰 포스터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건 무조건 액자로 만들어야겠다 싶어 제작을 맡겼는데, 액자로 완성된 포스터는 역시 그 위용(?)이 대단했다. 


워낙 큰 사이즈이기에 매장에서도 손이 닿지 않는 위쪽에 전시를 해두었는데, 우연히 위쪽으로 보게 되었다가 이 포스터를 발견하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이건 판매라기보다는 전시용으로 제작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대형 액자형 포스터는 주문제작 형태로 제작되기 때문에 우리가 배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업체 쪽에서 바로 배송이 되기 때문에 매장에서는 택배 발송이 어려워 구매를 하려면 직접 이 큰 사이즈의 액자를 들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차를 가지고 온 손님이 살 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오래오래 전시할 목적의 포스터였다.


그런데 지난 주말 어떤 손님이 한참이나 고개를 높이 들어 이 포스터를 주목하더니 동행과 얘기를 나눈 뒤 이윽고 나에게 판매가 가능한지, 얼마인지 묻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가격은 얼마고, 이건 1개밖에 현재 없어서 주문을 하시게 되면 직접 들고 가셔야 합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이걸 사시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손님분의 반응이 점점 더 살 것 만 같았다. 보통 이런 경우면 어떻게든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마조마하며 구매 성공을 바라곤 하는데, 이 날은 기분이 조금 달랐다. 정말로 살 것만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면 될수록 속으로는 '아, 안 샀으면 좋겠는데...'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수급해 판매하는 가게이다 보니 가끔 이런 경우가 생긴다. 마지막 한 개 남았을 때 특히 그런데, 뭐랄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액자와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아니 그것보다는 언제가 이별할 거라고 생각해보질 않았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터라 더욱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남몰래 속으로 '어떡하지..' 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손님이 결국 구매를 포기하는 바람에 이 포스터는 그대로 매장에 남게 되었다.


제품을 판매하는 주인이 판매될까 봐 걱정하는 꼴이라니 ㅎ. 한 편으론 우습지만 그런 애정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에 나름 자부심도 느낀다. 이 가게는 그런 마음이 없으면 운영할 수 없는 곳이니까.


문제(?)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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