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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Dec 31. 2020

96. 내일이 오면은

2020년 제발 안녕

학창 시절에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몹시 특별하고 커다란 행사 같았다. 새해가 되어 새 학년이 되면 누구와 같은 반이 될까? 담임 선생님은 누굴까? 혹은 새로운 학교는 어떨까? 등 단순히 새해가 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달라지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새해에 대한 이런 설렘과 기대가 점점 줄어들었다. 누구나 하는 새로운 계획과 다짐들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달력의 새로운 한 장을 넘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렇게 말하면 너무 정 없지만), 물리적으로 새해여서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어진 다음에는 점점 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에게 그렇듯, 2020년이라는 숫자가 아직도 어색한데, 무언가를 제대로 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저 답답함만 가득했던 채로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모두 지나가고야 말았다. 각자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모두 다른 시간과 경험이 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2020년이라는 1년의 시간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아주 긴 인내의 시간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냈을 2020년이라는 시간은 내게도 쉽지 않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자영업자가 되고 2년 차에 맞은 코로나 19의 시대는 혹독했고,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인정해야만 했으며, 그럼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계속 무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언제도 한 번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 보는 편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염두에 두면 모든 일에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그만큼 줄게 되고, 또 무엇보다 실제로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비교적 차분하게 준비했던 대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많은 최악의 상황들이 벌어졌던 올 한 해는 그렇게 미리 준비했던 대로 대처하거나 혹은 최악의 상황까지 오지 않은 것에 감사할 기회가 오히려 많은 시간이기도 했다. '만약 이랬다면 어쩔 뻔했지?' '이런 경우는 방법이 없는데 우린 정말 운이 좋았다'하며 오히려 '다행이다'라는 말을 더 자주 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경우들도 있었고, 실제로 상대적으로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일들도 많았다. 


안타깝게도 2020년이 끝나고 2021년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이 바이러스의 시대는 더 오래 지속되거나 극복되더라도 후유증이 오래갈 것이다. 그런데도, 2020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건 정말 오랜만에 그 자체로 무언가 희망적이다. 설령 2021년까지 이 상황이 더 지속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고통을 겪을 때 가장 힘든 건 고통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때다. 아무도 2020년을 시작할 때 이런 1년을 보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2021년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상태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금 더 버텨낼 인내의 동력을 갖고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2021년이라는 숫자는 그냥 희망적이다.


얼마 전 끝난 SMTM에서 발표된 릴보이와 기리보이의 '내일이 오면'이라는 곡을 요즘 자주 반복한다. 2021년에는 내일이 오면 어떨지 그래도 기대를 가질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0년은 몇 번 써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끝나는구나. 안녕.


2020년의 마지막날,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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