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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Feb 17. 2021

102. 작지만 큰 영역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나을까

고민이 많다. 

처음 영화 굿즈샵을 창업하기로 했을 땐 아직 아무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업종이라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없어서 막막함에 고민이 많았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자료조사를 열심히 한 결과 예상보다는 빠른 기간 내에 이 고민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네마 스토어라는 카테고리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갈수록 심해지는 고민은 역시 영역과 깊이에 관한 문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소품샵도 아니고, 빈티지샵도 아니고 영화와 관련된 아이템으로만 한정된 스토어이니 비교적 그 바운더리가 좁아 심플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의 구성을 보자면 시네마 스토어라는 캐릭터는 변하지 않았음에도 그 안에 수많은 세부 영역을 포함하고 있는 탓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브랜드들과 경쟁 아닌 경쟁을 (어쩌면 나 홀로)하는 중이다. 


일단 최근 가장 많이 판매하고 있는 바이닐(LP)을 필두로, 영화 포스터가 있고, 피규어도 있고, 도서도 있고, 각종 문구류 등 액세서리들도 있다. 이런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들이 영화라는 콘셉트 아래에 하나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다르게 보자면 각각 카테고리 별로 전문 스토어들과 겨루고 있는 셈이다. 이를 테면 최근 들어 역시 붐을 타고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온/오프라인 스토어들이 생긴 바이닐 시장을 보자면, 우리 내에서는 바이닐이 큰 비중을 현재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 시장으로 보자면 수많은 바이닐 전문샵, 음반 전문 스토어들과 경쟁 중이다. 포스터 역시 오래전부터 영화 포스터만 전문적으로 판매해온 샵들이 몇 곳 존재하고 (대부분은 라이선스가 없이 고화질 프린터로 출력해 판매하는 불법 업체들이 많다), 피규어를 판매하는 전문샵이나 수많은 책방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수많은 전문샵들과 비교를 하다 보니 우리는 결과적으로 콘셉트가 확실하기는 하지만 그들에 비해 얇고 넓은 깊이를 갖고 있는 정도다. 전문 바이닐 샵들에 비해 보유하고 있는 바이닐의 목록은 부족할 수 밖에는 없고, 피규어 역시 겉핥기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포스터의 라인업도 전문샵에 비하자면 훨씬 적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매번 이런 전문 샵들의 규모나 퀄리티를 볼 때마다 적지 않은 스트레스와 자극을 받는다. 그 가운데는 더 할 수 있는데 여러 사정상 안 하고 있는 일들도 있고, 더 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돼서 못하는 일들도 많다. 물론 우리처럼 하나의 콘셉트로 운영하는 스토어가 각각의 전문 스토어들과 동일한 수준의 퀄리티를 모두 갖추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운영자이기 전에 소비자로서 이 모든 영역을 일찍이 두루두루 이용한 경험이 있다 보니, 전문샵에 비해 깊이가 부족한 우리의 퀄리티에 매번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라는 콘셉트 아래 더 다양한 카테고리(제품군)로 넓혀 가는 방향을 선택할지, 아니면 현재의 카테고리들을 전문샵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로 성장시키는 데에 힘을 쏟을지 고민이 많다. 물론 두 방향 모두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머지않아 선택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우리만 판매하는 독점 제품들, 혹은 모든 판매처들과 비교해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확보할 수 있는 능력 (시중에 최저가 상품들은 가장 저렴하게 제품을 수급했다기보다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손해를 보며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불가피한 능력 말고 진짜 능력), 구하기 힘든 제품들을 비교적 여유 있게 확보하는 능력 등. 

아.... 이러면 사업이 커질 수밖에 없을 텐데, 내 본래 목표는 사업의 규모를 적당히 작은 규모로 유지하는 것이었고... 결국 올해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첫 선택을 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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