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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Feb 10. 2021

101. 진짜 휴무

택배사가 쉬는 날이 우리도 쉬는 날

온라인 스토어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그날그날 주문건 발송 처리를 해야 하다 보니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보통의 온라인 스토어라면 오프라인 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택배가 쉬는 주말에 일반 직장인들처럼 쉬는 날을 갖기 마련인데, 우리는 오프라인 매장도 있다 보니 (더군다나 주말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일부러 기존 휴무일인 월요일에 하루를 더해 화요일까지 오프라인 매장 휴무를 임시적으로 갖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택배 발송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농담처럼 택배사가 쉬는 날이 곧 우리의 진정한 휴무다 라고 말해왔었는데, 그런 기간이 1년에 딱 두 번 정도 있다. 평일이지만 택배회사가 제품을 더 이상 수거/발송하지 않는 기간, 바로 설 연휴와 추석 연휴 전 며칠 간이다. 이 때는 연휴 앞뒤로 배송물량이 평소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보통 빨간 날의 3~4일쯤 전부터 신규 발송업무를 중단하곤 한다. 고객에게 제품이 배송되는 것은 더 늦게까지 진행하지만 신규 건을 받는 건 한시적으로 보류하는 것이다. 


이번 구정 연휴를 앞두고 그렇게 택배사의 픽업 중단에 맞춰 며칠의 발송 공백을 갖게 됐다. 실제 휴일인 연휴기간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일주일 가까운 긴 시간이다. 물론 이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그간 밀려있는 주문건을 한꺼번에 포장/배송해야 하다 보니 업무가 더 가중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며칠 동안은 포장 업무의 부담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 오랜만에 여유 아닌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걸 진짜 여유 혹은 휴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정말로 일이 없어서 쉬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을 계속 미뤄서 쌓아두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즉, 이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여유가가 더하면 더할수록 그것이 끝나는 동시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조여 온다. 그래서 우리도 아마 내일부터는 미리미리 조금씩 포장을 해둘 예정인데, 이건 택배기사분들의 업무 부담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가끔씩 일요일도 택배를 받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을 텐데 이게 바로 그런 경우다. 그 날은 공식적으로는 쉬는 날이지만 일요일 어느 정도 물량을 빼지 않으면 본인 스스로가 월요일 업무가 감당 안 될 정도로 많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요일에도 배송업무를 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최근 온라인 스토어 업무의 비중이 커지면서 택배기사분들의 업무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졌다. 여러 가지 부당한 처사들도 많지만 (분류작업은 업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것들)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당일 발송, 새벽 배송, 로켓 배송 등 점점 더 속도전이 되어 버린 시스템 자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일이 잦아졌다. 우리도 오후 3시까지의 주문은 당일 발송을 사실상 약속하고 있고, 고객 대부분의 만족 포인트가 빠른 배송과 안전한 포장일 정도로 빠른 배송은 우리의 강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나 역시도 그 포인트를 잃을 수 없어서 매일매일 이 속도전에서 퇴장하고 있지 못하다 보니 더더욱 이 택배 환경에 대해 고민이 많다.


하루쯤 더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다리도록 운영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지만 이미 스토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걸 과연 포기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고, 또 슬로우 라이프를 표방하며 당일 발송을 지양 한다한들, 실제 택배 환경과 사용자 인식 개선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만 얻고 (그나마도 얻지 못할 수 있고) 실익은 전혀 없는 방향성이 되어 버릴 수 있어 이런 결정을 하는 것도 주저된다 (환경을 위해 매장 내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올해, 아니 앞으로 마이페이보릿을 운영하면서 하고 싶은 소박하지만 담대한 일들 중 하나는 바로 이런 환경개선에 관한 것이다. 사용자가 조금 더 주문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 사용자가 조금 더 불편해지기는 하지만 그 대신 그 불편함의 감수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거나, 전체적인 시스템 자체가 더 건강해지는 결과를 서로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조금씩 천천히 하나씩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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