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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Mar 17. 2021

103.강약 중강 약

모든 일에는 정도 조절이 필요해

우리 같이 재고를 보수적으로 가져가면서 온라인 재고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곳도 가끔씩은 재고가 맞지 않아 온라인 주문 고객에게 품절 안내를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 


분명히 재고가 있는 것으로 나와서 주문을 했는데 나중에 품절되었다는 연락을 받으면 누구라도 기분 좋을 고객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 판매자가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 판매자가 상황 설명과 진지한 사과를 해야 하기도 하고.


며칠 전에 오랜만에 재고 오류로 품절이 되어 배송이 어려운 경우가 한 번 있었다. 평소처럼 상황 설명과 사과를 최대한 정성껏 안내드렸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하나라도 보내주세요' (이 분은 같은 제품을 2장 주문했다)

'테러 평점 계속 날릴 겁니다'

'마이페이보릿 망하는 거 지켜볼 겁니다'


조금 의미만 통하는 수준으로 바꿔 쓸까 했지만 정말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저렇게 메시지를 받았다. 또 한 번 사과 메시지를 작성하던 나는 순간 키보드를 열심히 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그냥 계속 사과의 메시지를 계속 남길지, 아니면 도가 지나치다고 나도 에너지 레벨을 함께 올릴지 등등. 바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조금의 시간이라도 정리를 한 뒤 대응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경우 아무리 상대가 잘못했더라도 고객과 소비자의 입장은 동등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과를 거듭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때가 많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고객에게 계속 저자세로 사과를 해봐야 결국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에 설령 일이 복잡해지더라도 그 보다 더 큰 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마무리지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악담을 하시면 어떤 판매자도 좋게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나머지 주문건도 취소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마무리하고 더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은 진행하지 않았다.


최근 인터넷에서 종종 보게 되는 씁쓸한 뉴스들이 있다. 배달 음식을 시켰는데 조금 늦었거나 혹은 무언가 작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더 나아가 본인이 잘못한 것은 모르고 무턱대고 배달원이나 판매자의 탓으로 돌리며 심한 욕과 인신공격 등을 일삼는 이들에 관한 뉴스 말이다.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를 떠나서 이런 뉴스를 보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배달 음식이 조금 늦은 일이, 주문한 바이닐이 품절되어 못 받게 된 일이, 그렇게 저주를 퍼붓고 테러하겠다고 협박을 할 만큼 중요하고 분노할 만한 일이었을까 하는 물음. 그 정도로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일이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분노는 할 수 있고, 짜증도 날 수 있다. 더군다나 어찌 되었든 간에 겪지 않았을 수도 있는 불편을 겪게 된 것은 분명 화가 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을까? 모든 일에 강강으로만 반응한다면 삶이 피곤하고 금방 지치지 않을까? 약한 일에는 약한 정도로 대응하고, 정말 강하게 대응해야 할 때는 그에 맞는 강도로 대응하는 것이 사회는 물론 본인 스스로에게도 더 나은 일이 아닐까?


보통 이런 일을 겪으면 며칠이고 화가 나고 짜증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평소, 아니 살면서 거의 처음 듣게 된 수준의 악담이자 협박성 발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화가 나기 보다는, 다들 조금 릴랙스하고 상황에 따라 강약 중강 약을 조절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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