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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Apr 10. 2021

107. 너무 멋진 곳들이 나를 재촉한다

오늘도 쫓기는 기분

IT 스타트업 회사를 다닐 때 신규 서비스를 기획하며 항상 했던 얘기가 있다.

'지금 우리가 처음이라고 생각한 이 아이디어는 분명 적지 않은 숫자의 다른 누군가(회사)가 동시에 떠올리고 있는 아이디어일 것이다'라는 것. 


속도와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한 IT 스타트업이어서 더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주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동종업계에서는 아주 유니크한 것이 아닐 확률이 높고,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이런 신박한 아이디어는 실제로 아주 여럿이 동시에 떠올리고 있으며, 결국 누가 더 빠르고 제대로 실행하는 냐의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내 실제 경험에서도 그 당시 한참 업계에서는 맛집 어플, 가격비교, 소셜커머스 등이 막 붐이 일어나기 전 우리 회사도 이런 비슷한 서비스 아이디어가 많았고 실제로도 몇 가지는 실행에 옮기기도 했었는데, 바로 몇 달 사이에 지금 들어도 알만한 서비스들이 빠르게 론칭되어 금세 대세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 즉슨, 시기 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아직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생각했을 땐, 아주 많은 비슷한 이들이 이 아이디어를 동시에 떠올렸거나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IT 업계에서는 특히 이런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면서 위험하기도 한데, 유니크하다고 맹신하는 순간 평범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거나 속도전에서  뒤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예전 회사 시절 일을 끄집어냈나 하니, 요새 들어 부쩍 조만간 우리와 아주 같은 형태의 영화 굿즈샵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아니 반드시 생기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이 글을 쓰는 2021년 4월 현재 국내에 영화 굿즈샵 형태의 브랜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격이나 형태를 봤을 때 우리와는 조금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머지않은 시간 내에 성격도 형태도 아주 유사한 브랜드가 생겨날 것 만 같은 불길한 예언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불길하지만 영화팬들에겐 물론 반가운 소식이겠지).


이전에도 자주 전국적으로, 특히 지방 도시에 아주 멋진 카페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며 '와, 카페 접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계속 더 멋진 카페들이 생겨나는 걸 보며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멋진 가게들이 카페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생활이라는 카테고리로 점점 좁혀 오기 시작하는 양상이고, 아마도 요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바이닐 샵과 같이 조만간 영화 관련 샵들도 생겨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늘도 인스타그램을 모니터링하다가 그동안 보던 가게들보다도 우리와 아주 유사성이 높은 (물론 영화 굿즈샵은 다행히(?) 아니지만) 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솔직히 너무 멋져서 닮고 싶은 생각이 드는 동시에 무언가 쫓기는 듯한 느낌이 부쩍 들었다. 그리고 이 가게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 위치한 가게였다.


사실 지금 군산에 자리 잡은 마이페이보릿 오프라인 매장은 건물이나 내부 인테리어가 내 취향이 100% 반영된 결과물은 아니다. 이미 1차 리모델링을 마친 건물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이 도시엔 이런 건물이 잘 어울리고 이런 스타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하게 된 공간이었는데, 물론 그 결과는 지금도 만족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노하우가 없던 시절 예상만으로 구상한 공간이기에 실제 운영을 하면서 내부 공간 기획에 대해 아쉬운 점들이 하나씩 늘어났고, 처음부터 더 높은 완성도로 공간 기획을 할 수 있는 지금, 새로운 공간에 대한 꿈이 더 커져가고 있다.


지난 2년 반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가게 공간을 조금씩 변형시켜왔다면 이제는 대대적인 리뉴얼 혹은 아예 새로운 공간에서의 시작이 필요한 시점에 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대대적인 리뉴얼과 새로운 공간에서의 시작이 별개로 이뤄질지도 모르겠고. 지난 2년 간은 단기적인 생존 자체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면, 햇수로 3년 차가 되는 시점부터는 장기적인 생존과 그에 따라 한 발 더 나아가는 계획이 주된 고민거리다. 


(추신, 아니 중요사항) 혹시 이 글을 돈 많은 독지가 분이 보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연락 주세요. 따지고 보면 귀하가 가진 재산 가운데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적은(?) 돈으로 훨씬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저희에게 투자하세요.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런 희망을 품고 오늘도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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