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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Oct 28. 2021

119.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정성을 담은 큐레이션이 다시 필요해

요 근래 몹시 나태해졌다. 나태해진 이유가 바빠졌기 때문이라는 게 핑계이긴 하지만. 요일을 정해두고 글쓰기를 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계속하는 것은 힘이 된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글도 한 줄 쓰지 못했다. 그 사이 새로 뽑은 직원은 이제 어느덧 두 달 차가 되어 잘 적응하고 있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슈들 속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도 내고 있다.


요즘 부쩍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커져서 아주 오랜만에 브랜딩과 작은 스타트업, 공간, 콘텐츠 등의 인사이트를 다시금 찾아보고 있다. 그렇게 유튜브에서 브랜드 운영자들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게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좋아서 시작한 일. 회사 생활과는 달리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와 규모의 적당선을 유지하며 일하기. 하지만 지속 가능한 일로 만들기 등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잊지 않으려고 중간중간 되뇌는 가치들이 있다. 이렇게 거창하다면 거창한 가치들 말고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도 있다. 이를 테면 좋아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설득하기 같은 거. 


온라인 판매의 비중이 커지고 또 인스타그램이 주된 브랜드 창구가 되면서 점차 나도 모르는 사이에 SNS에 최적화된 업무형태가 되어버렸다. SNS에 어떤 사진을 올릴 것이냐, 입고 소식은 언제쯤 어떻게 올릴 것인가, 제품 사진은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처럼. 그런 고민들을 매일 하는 덕에 이 채널 하나 만으로도 많은 유입을 유도하고는 있지만, 한 편으론 그런 불만 아닌 불만도 있다.


'우리는 그저 쇼핑몰인가?' '나는 그저 쇼핑몰을 하려던 건 아닌데..'


결국 과정이 어찌 되었든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한다는 것은 더 많은 제품의 판매가 목적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고 간과해서인지 몰라도 그 '과정'이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잘 팔리는 제품을 구해와 판매하기보다는 이 제품을(영화를, 음악을) 내가 왜 좋아하고, 어떤 포인트가 감동적이고, 그래서 이 제품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소개하며 큐레이션 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이 과정이 너무 생략되어 있다. 


최근(최근도 아니다) 인스타에 올린 글들을 보면 대부분 입고된 제품을 그저 이름만 나열하는 것에 그칠 때가 많다. 제품명과 특이점 (주로 바이닐의 경우 컬러 반인가 아닌가, 몇 장인가, 한정 반인가 아닌가 등) 정도를 정리해 올릴 때가 대부분인데, 이건 소비자가 가장 궁금해할 기본적인 제품 정보이기는 하지만 모든 판매자가 알고 있고 전달할 수 있는 단순 데이터다. 아마 이렇게 그저 기본 정보 전달만 하게 된 이유는, 매일매일 새로운 입고 소식 자체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무엇보다 이렇게만 해도 제품 판매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 (혹은 착각) 때문일 거다. 굳이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아이템에 대한 소개 글을 적지 않아도, 빨리 입고 소식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가 주력으로 소개하는 바이닐 제품들이 대부분 수요보다 적은 수량만 입고되어 금세 품절되곤 하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도 입고 소식을 알리자마자 60장이 넘는 엘피가 10분도 안돼 모두 판매되고, 하루 종일 재입고 여부를 묻는 CS를 대응해야 했고 또 그 주문 건들을 종일 포장하느라 바쁜 하루였다. 이 제품도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고, 그래서 나는 단순히 입고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 그쳤고, 다른 특별한 큐레이션의 코멘트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매일매일 문제없이 제품이 판매되고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브랜딩의 측면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단순 큐레이션 만으로도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그렇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언제라도 단숨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을 더 다양하게, 더 많이 확보하는 것 자체도 큐레이션의 종류이자 브랜딩 성격을 갖지만 그것 만으로는 머지않아 한계가 올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만의 차별점과 캐릭터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이 제품을 소개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더 설명해야만 한다. 왜 내가 이 아이템을, 이 영화를, 이 음악을 좋아하는지를, 이미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만들고, 처음 알게 된 이들이라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구매로 이어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아, 왜 이 브랜드 이름이 '마이페이보릿'인 줄은 알겠네'라고 설득될 수 있게. 


오늘도 이렇게 초심을 다시 끄집어 내 본다. 초심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면, 자주 끄집어내기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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