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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Nov 17. 2021

121. 디깅엔 루테인이 필요해

눈 건강이 곧 비즈니스의 힘

계속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부족한 아이템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채우는 일. 남들에겐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이자 취미이기도 한 일종의 디깅 같은 행위가 내게는 곧 일이다. 그것도 업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일. 효율성이 강조되는 큐레이션이 일상이 된 요즘, 우리가 보는 수많은 큐레이션들은 아마도 누군가의 아주 오랜 디깅의 시간이 담긴 결과물일 거다. 


책이면 책, 음반이면 음반, 피규어면 피규어, 좀 더 일원화된 비즈니스라면 수월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들 외에도 오만가지를 취급하는 우리는 거래처만 해도 수십 곳 (요 근래는 세어보지 않았는데 세 자릿수에 도달하지 않을까 두렵다)이라 각각 주문하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다. 워낙 거래처가 많다 보니 그저 기본적인 주문 루틴을 한 사이클 도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종류도 심지어 언어와 화폐 종류도(달러, 유로, 엔, 파운드 등) 각각 다양하다 보니 조금만 집중력이 흐트러져도 엉뚱한 아이템을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매번 집중 또 집중하게 된다.


많은 곳이 웹사이트를 통해 비교적 편리하게 주문이 가능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거래처들은 스크롤 바의 크기가 아주 작은 엑셀 파일을 보고 주문서를 작성해야 하는 곳들도 있다. 음반의 경우 아티스트 명 등으로 순서가 정리되어 있는데 그냥 알고 있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검색해서 주문하는 수준이라면 수월하겠지만, 계속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또 기억에만 의존해 주문할 수 없다 보니 이 긴 리스트를 0부터 Z까지 훑어내려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집중해서 스크롤을 천천히 내려다가 보면 이내 눈이 피곤해진다. 슥슥, 휙휙 익숙한 것들로 기본 주문서를 작성하면 시원시원하게 스크롤을 내리며 눈이 피곤할 틈도 없이 주문을 마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최근엔 좀 더 제품 매입에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그야말로 리스트를 정독 또 정독하고 있다 보니 눈의 피로도가 말이 아니다. 거의 눈 건강과 주문의 퀄리티를 맞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주문한 제품들이 이내 팔려서 번 돈으로 루테인을 사 먹으면 다시 처음으로 복원되는 것일까. 뭔가 살짝 우울해진다.


오늘도 늦은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다시 해외 거래처에 주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눈이 빠져라 리스트를 훑다가 잠시 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글쓰기로 피난을 왔다 (하지만 글쓰기도 모니터를 보고...). 잠시 쉬고 난 뒤 다시 눈에 심지를 켜고 보석 같은 아이템들을 찾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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