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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Dec 03. 2021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낭만의 시대 참혹한 이면


라스트 나잇 인 소호 (Last Night in Soho, 2021)

낭만의 시대 참혹한 이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출했던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신작 '라스트 나잇 인 소호 (Last Night in Soho, 2021)'는 감각적이면서 섬뜩한 공포 스릴러 영화다. 런던의 현재와 60년 대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아주 특별하지는 않지만 몹시 으스스하고, 감독의 전작들처럼 화려하고 감각적이며 리드미컬 하지만 정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음악을 잘 쓰고, 감각적인 영상미와 유머러스함이 장점인 에드가 라이트는 이번 영화에서는 웃음기를 완전히 지우고, 무섭고 이상한 무드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완성해 냈다. 


먼저 박찬욱 감독과 '아가씨' '스토커' 등을 함께 작업하고 할리우드에서도 '그것 (It)' 등 여러 작품의 촬영 감독을 맡기도 했던 정정훈 촬영감독의 영상미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고 현재와 과거가 혼재되어 있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든다. 극 중 안야 테일러 조이와 토마신 맥켄지가 동시에 등장하는 여러 장면들은 일부 CG가 사용되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아날로그 아이디어로 완성한 샷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감각적인 영상은 에드가 라이트의 전작 '베이비 드라이버'와는 다르게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심지어 음악이 여전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건 이런 화려함이 보여주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사용된 거의 모든 촬영 기술과 미술 등은 완전히 이야기에 구속되어 있다. 즉, 이유 없이 과장된 영상과 미술이 아니라는 얘기다.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 과장되어 있었던 60년대의 화려한 묘사는 그 과장됨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이면의 참혹한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든다. 감각적인 에드가 라이트와 화려했던 1960년대는 마치 바즈 루어만과 '물랑루즈'처럼 화려하게 맞아떨어지는 조합일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노스탤지어에 기대지 않고 그 이면을 더 깊게 바라보려는 의도가 분명한 작품이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꿈인지, 환각인지, 시간여행인지 불분명한 상태로 진행되는 중반부까지는 이 이상한 무드가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는데, 오히려 모든 실마리가 풀리고 종극으로 치닫는 후반부는 장르적으로는 쾌감을 주지만 전반부의 신선했던 '이상함' 만큼의 만족감은 주지 못한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중반부까지가 매력적이었던 건 바로 그 불분명함을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함께 그려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들이 분명해지면서 매력을 잃게 된 점도 있고, 어떤 선택은 작품의 의도 역시 조금은 불분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쉬웠다. 극 중 엘로이즈가 겪은 일들이 과거 같은 공간에서 샌디에게 벌어졌던 비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죽음을 맞이한 대상이 샌디가 아니라 샌디가 상대해야 했던 남자들이었다는 점은 비극의 연장선에 있지만, 유령처럼 계속 엘로이즈를 괴롭혔던 남자들이 마지막에는 샌디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오히려 명확한 피해자로서 샌디라는 캐릭터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지점이라 조금은 아쉬운 점이었다. 


더불어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엘로이즈가 내적으로도 깊이 관여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지만, 결론에 가서는 결국 샌디의 비극을 발견하고 전달하는 임무에 그치는 점도 아쉬웠다. 끝에 가서는 마치 탐정이 사건을 풀어낸 것 같은 결과가 되어 버렸는데, 그보다는 전반부부터 내적으로 갈등 (혹은 정신착란)이 깊던 엘로이즈의 이야기와 완전히 겹쳐지는 (그래서 더 파국으로 치닫는) 스릴러 드라마로 발전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스포일러 끝)


새삼스럽지만 이 영화를 보고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오랜만에 이상한 영화를 봤다'였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이상한 상업 영화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근래에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A24의 영화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런 이상한 것들에 반응하는 감각들을 오랜만에 깨워 준 매력적인 영화였다. 


* 영화음악이 정말 좋다. 수록곡도 스코어도.

*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의 캐스팅은 정말 완벽했다. 

* 이 정도로 한 도시를 실명으로 무섭게 묘사할 경우 우리나라 같았으면 시민들과 시장이 들고일어났을 텐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는 '런던은 만만치 않은 곳이야'인데, 이 얘기가 자꾸 '서울 가면 조심해라'로 바꿔 들렸던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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