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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an 19. 202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1)

실패한 리메이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2021)

실패한 리메이크


어린 시절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가장 많이 보았던 영화들은 스티븐 스필버그로 대표되는 어드벤처 영화들과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같은 뮤지컬 영화들이었다.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특히 좋아하셨던 부모님 덕에 뮤지컬 영화들은 극 중 노래 장면들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외울 정도였는데, 몇몇 장면들은 몇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안무가 기억날 정도로 당시 TV 앞에서 셀 수 없이 보고 따라서 추곤 했었다 (비디오 테이프를 바꿔가며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들의 댄스 시퀀스를 뻘뻘 땀을 흘려가며 한 바탕 따라 추는 것은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였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중 하나가 바로 로버트 와이즈와 제롬 로빈슨이 연출한 1961년 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다. 당시 즐겨봤던 다른 뮤지컬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어린 나이에 얼핏 기억하기에도) 상대적으로 어둡고, 진지하고, 폭력적인 장면들도 있어 더 무게 있고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상대적으로 '7인의 신부' '사랑은 비를 타고' '올리버' 등이 유쾌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후에 더 좋아하게 된 뮤지컬 영화도 다름 아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다.


로버트 와이즈와 제롬 로빈슨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뮤지컬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누군가에게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를 소개할 때 추천할 만한 작품인 동시에, 노래와 안무가 가장 완벽하고 우아하게(이 영화의 안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은 몇 번씩 반복해도 좋을 정도로 '우아하다' 그 자체다) 합을 이루고 있고 레너드 번스타인의 곡들은 영화를 보지 않은 대중들에게도 익숙할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다. 



이렇듯 특별히 애정 하는 뮤지컬 영화 중에서도 특별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기에 이 원작을 다른 감독도 아닌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만큼 걱정되는 바도 있었다).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궁금한 것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왜? 리메이크했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리메이크할 것인가'였다. 


2021년 버전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는 원작 영화에 비해 몇 가지 바뀐 점들이 있는데, 구성상 순서를 바꾸거나 노래의 화자를 바꾸거나 노래의 배경(장소)을 바꾸거나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엿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원작에서는 타인들과 접하지 않은 자신들 만의 공간 (집 안이나 건물 옥상 등)에서 이뤄졌던 노래 시퀀스들을 대부분 타인들에게 노출되는 넓은 거리 공간으로 가져왔다. 그로 인해 이 시퀀스는 더 영화적으로 화려해졌고 그 메시지의 크기는 대중적으로 더 확장됐지만, 어딘가 모르게 과장된 느낌이 짙고, 메시지 측면에서도 오히려 크기는 커졌을지언정 농도는 더 옅어졌다 (구성의 순서를 바꾼 것 중에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유쾌한 분위기의 'I fell pretty'를 결투가 벌어진 뒤로 바꾼 점이다).


미국 땅에 사는 이민자로서 자신들 만의 애환과 고민을 말하는 노래들은 거리로 나와 더 많은 이민자들과 미국인들의 시선에 노출되고 공감 혹은 눈총을 받는 기회가 생겼지만, 그 애환의 깊이는 확실히 덜해진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원작의 노래들은 공간적으로 봤을 때 개방되어 있지만 내밀한 공간들에서 벌어지고 있어 자신들 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한계가 오히려 매력적이고 고민해볼거리였던 것 같다. 그의 반해 이번 스필버그의 버전은 확실히 소통이라는 메시지에 집중한 느낌이다. 의도적으로 비중을 늘린 자막 없는 스페인어의 활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통의 부제로 인해 벌어지는 다툼과 비극이라는 시선이 영화 전반을 관통한다. 혹자는 그래서 내러티브 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는데, 본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뮤지컬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점에서 내러티브의 보완이 핵심적 장점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모든 뮤지컬 시퀀스가 놀랍게도 다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원작의 팬으로서 원작보다 낫다 못하다의 측면이 아니라, 이 음악과 안무의 장점을 하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프롤로그에서 바로 이어지는 오버추어 시퀀스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백미를 보여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이번 작에서는 음악과 안무의 합이 전혀 좋지 않았다. 원작을 보면 많은 뮤지컬 영화들이 그렇듯이 단순히 배경 음악에 가장 어울리는 안무를 맞춘 형태가 아니라, 그 음악에만 맞는 안무, 그 안무에만 딱 떨어지는 음악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번 작에서는 일부러 피해 간 것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대로 반복하는 것만도 못한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 곡에는 그 안무가 딱 떨어지는 형태이기에 그 안무를 스타일만 바꿔서 반복하거나 리듬감을 죽이지 않는 선에서 변형해야 하는데, 이번 영화의 안무는 대부분 그 리듬감을 전혀 살리지 못한 별개의 안무처럼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첫 번째 시퀀스에서 어긋난 곡과 안무의 합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렇다 보니 마치 뮤지컬 영화의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관객들처럼 (아니 왜 갑자기 노래하고 춤을 추는 거야?), 뮤지컬 시퀀스가 나올 때마다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장면들이 별로라도 뮤지컬 시퀀스에서 완전히 집중시키고 매력을 발산해야 하는 것이 뮤지컬 영화인데, 이번 영화는 정반대였다. 새롭게 선택한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 보다 방식이 잘 못된 것 같아 보였고, 배우들의 매력도 이런 방식을 뚫고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원작에서 아니타를 연기하기도 했던 리타 모레노가 부르는 썸웨어 시퀀스는 배우의 힘 덕에 좋지 않을 수가 없었고, 마리아 역의 레이첼 제글러는 나탈리 우드와는 또 다른 느낌이어서 괜찮았다. 안셀 에고트의 토니는 배우의 사생활 문제를 재쳐두더라도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가창은 리처드 베이머에 비해 차이가 너무 컸다).



너무 기대했던 탓도 있겠지만 이렇듯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보고 나니 차라리 뮤지컬 장르를 선택하지 않고 일반적인 드라마 장르로 리메이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그렇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리메이크할 이유는 없어 보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뮤지컬 클래식이고, 뮤지컬 영화로서의 장점이 전부인 영화인데 뮤지컬 요소들이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니 끝까지 보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일은 거의 없는데 그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결국 그날 저녁 1961년 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다시 볼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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