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쉬타카 Jan 30. 2022

123. 알림 기능 해제

조금은 자유로워졌어

CS는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기보단 더 어려워진다. 보통의 일은 숙련도가 높아지면 훨씬 더 수월해지기 마련인데, CS 업무는 조금 결이 다른 것 같다. 이를테면 한정된 자원을 점점 소진해가는 느낌이다. 숙련될수록 보통 사람보다 한정된 양이 조금 더 늘어나긴 하지만 결국 소진될 운명이 확정된 업무에 가깝다. 기술적으로는 대처 능력이 증가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점점 소진되어 고갈될 수 밖에는 없어서 한계라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요즘 들어 나의 CS에너지가 거의 고갈된 느낌이다. 하긴 그동안 많이 쓰긴 썼다. 마이페이보릿을 하면서 사용한 에너지는 많지 않은 편이지만, 그전에 여러 회사 생활을 하며 이미 많은 양의 CS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였다. 그렇게 소진된 에너지를 기술적 숙련도로 상쇄해오고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거의 남지 않았다는 걸 자주 체감하곤 한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는 여러 장점들이 있지만 단점들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포인트는 판매자보다 구매자 중심에 여러 가지 초점이 맞춰있다는 것이다. 구매자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액션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주문을 취소한다던지 결제 금액의 지급 보류를 신청한다던지 (이건 정말 이상하다. 구매자는 네이버에 요청할 수 있는데 판매자는 네이버에 소명조차 할 수 없다)하는 것들은 판매자 입장에서는 난감할 때가 많다. CS의 경우도 네이버 톡톡이라는 메신저 서비스가 있는데, 톡톡 앱을 깔고 있으면 시간과 상관없이 고객 문의가 휴대폰에 푸시된다. 고객이 불편사항이나 문의사항을 남기면 실시간으로 푸시가 오는 형태인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중의 문의가 늦은 밤과 새벽시간에 집중되어 있다. 게시판의 형태라면 문의를 남기는 사람도 답변을 해야 하는 판매자도 문의를 남기는 시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텐데, 메신저 형태다 보니 문의 시간에 몹시 민감할 수 밖에는 없다.


아주 늦은 밤 시간이나 새벽 시간에 메시지를 받았을 때 처음엔, 별도의 게시판이 없으니 게시판에 문의를 남기듯 남기신 거겠지. 즉, 이 시간에 답변을 받아야 되겠다는 의도는 없는 문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많은 경우가 실제로 그랬고. 그런데 일부는 (당장 답변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님에도) 야심한 시간에 반드시 답변이 올 것이라고(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있다. 재차 질문을 한다던가, 왜 답변을 하지 않는지 다시 묻는 등을 보면 그렇다. 그런 질문에 대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문제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미 수차례 공지되어 있는 내용을 인지하지 못해 묻는 질문이거나, 신속성이 중요하지 않은 질문들이다. 


그런 메시지의 휴대폰 푸시를 퇴근 후에, 늦은 시간에, 개인적인 시간에 일방적으로 받다 보니 삶이 야금야금 고통스러워졌다. '띠링'하는 푸시음만 들어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다. 그렇다고 안 볼 수는 없고 해서 보면 95% 이상은 별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차라리 큰일이 있었으면 싶을 정도다. 그럴 경우라면 시간에 상관없이 바로 사과하고 안내드리고, 최대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면 될 일이니까. 


이렇게 하소연하고 나면 분명히 누군가가 '그럼 휴대폰 푸시를 끄면 되잖아'라고 말할 텐데, 맞다.

그래서 드디어 어제 톡톡 앱을 지웠다. 고객 불편을 더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전용 앱일 텐데, 결론적으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어차피 지독한 새로고침 중독자라 앱으로 푸시 오는 속도나 내가 직접 접속해서 확인하는 속도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럼 또 누군가가 '그럼 앱을 지워도 스트레스는 똑같은 거 아니냐'라고 말할 텐데, 그건 다르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선택권이 없이 일방적으로 업무 외 시간에 무방비로 CS메시지에 노출되는 것과, 결과는 같더라도 내가 선택해서 자의로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앱을 지운 이후에는 언제 메시지가 올지 몰라 휴대폰을 불안하게 바라볼 일도 없어졌고, 내가 원치 않을 때 삶의 평화가 깨져버리는 일도 막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CS의 속도가 느려졌나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자동 푸시에 뒤지지 않는 휴먼 새로고침이 있기 때문에...


앱을 지운 지 이제 이틀이 지났는데, 정말로 삶이 훨씬 윤택해졌다. 개인 삶만 평화로워지고 스토어의 CS 업무 질은 떨어진다면 그건 문제겠으나, 후자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점에서 진작 지울 걸 그랬다. 이렇게 확보한 에너지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에 투자하는 편이 결국 더 궁극적인 CS (Customer Service)일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122. 아디오스,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