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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Apr 23. 2022

127. 아슬아슬 취향의 경계

어쩌면 지금이 경계의 순간

언젠가 일 관련 미팅하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LP붐이 사그라들면 어쩌죠? 언제까지 이 유행이 계속될까요?"

최근 몇 년간 바이닐의 인기가 대단하다 보니 주력적으로 판매를 하는 곳들이 우리를 비롯해 정말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바이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아날로그 포맷이다 보니 유행이 끝나고 거품이 꺼지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유행은 한동안 더 지속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렇게 되면 더 위기감이 들 것 같아요"

"코로나가 끝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면 다시 바이닐을 만드는 공장들도 정상 운영될 거고, 여기에 바이닐 시장의 가치를 확인한 제조사들이 공장을 늘리고 생산량을 늘릴지도 모르거든요. 그러면 지금과 다르게 공급이 많아지면서 우리 같은 작은 가게는 경쟁력을 갖는 것이 어려울 것 같거든요"라고.


아직 그 정도로 정상화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이 과열된 시장의 분위기가 생산 및 제작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수요를 충분히 커버할 만큼의 공급은 되지 않고 있지만, 국내 시장만 보면 바이닐의 인기를 체감한 몇몇 음반사들이 앞다투어 바이닐 발매를 이어가고 있다. 아주 헤비 한 리스너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인디 뮤지션들의 앨범들도 바이닐로 발매된다고 하면 판매를 시작하기 무섭게 품절이 되어 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뮤지션들의 발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정말 많은 국내 뮤지션들의 앨범이 바이닐로 쏟아져 나오고, 몇 개월 뒤 발매될 앨범을 한참 전에 주문과 판매를 완료하는 등의 프로세스가 반복되면서 문득 더 이상 이렇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직도 내 '취향'이라는 이름 하에 선택된 앨범들만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층이 전반적인 바이닐 구매층으로 확대되면서 인기 있는 신보들은 가급적 판매하려고 하다 보니, 판매량과 매출은 늘었지만 점점 색깔이 희미해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내내 있었다. 


사실 근 1년 넘게 우리의 매출 구조상 바이닐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마진 구조는 열악하지만 매출 자체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중이 커졌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네마 스토어'라는 성격은 물론 가끔은 내 취향에서도 조금씩 벗어나는 신보들도 완판이 확실했기 때문에 판매하는 일이 점점 늘었다. 이런 시점에서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바이닐의 판매 비중을 의도적으로 줄이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바이닐 외에 제품들로 매출의 빈 공간을 메운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취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제품들의 판매를 중지하거나 주문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지금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더 이상 이 잘되기만 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기만 했다가는, 내 의지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위기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들이 '마이페이보릿'하면 엘피 파는 곳이라는 생각이 더 굳어지기 전에, 이쯤에서 천천히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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