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잘 넘겼다!
(어쩌다 보니 아슬아슬 시리즈 2탄이 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매출과 성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항상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던 이유가 있었다. 근래 바이닐 시장은 마진은 적고 입고가는 높은 편이라 잘 나가다가도 한 두 번 작지 않은 실수가 반복되면 작은 가게는 금세 위험해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주문을 할 때마다 고민 고민됐다. 제작사나 거래처에 주문하는 시점이 곧 우리를 제외한 다른 샵들이 예약주문을 받는 시점이기 때문에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일종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래서 더 유혹에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주문 시점에서 대부분 품절이 되는 걸 보게 되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량을 (할 수만 있다면) 주문, 확보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는 수량이 얼마가 되었든 확보만 한다면 전량을 판매하는 건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즉, 판매가 문제가 아니라 확보가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유혹에 흔들리곤 한다.
시장이 점점 과열되다 보니 매번 '없어서 못 팔지언정, 재고가 남도록 만들지 말자'라는 걸 되새기는 나로서도, 이 유혹에 끝내 넘어간 경우가 최근 몇 번 있었다. 몇 번은 유혹에 넘어간 것이었고, 몇 번은 다른 이유로 판매시점과 주문 수량 등이 꼬이면서 분명 부족했던 수량이 시장에 넘쳐나거나, 예상치 못했던 다른 샵들의 낮은 판매가로 상대적으로 고가 판매가 되어버려 판매 부진을 겪는 일도 생겼다.
이렇게 우려했던 한 두 번의 실수 아닌 실수가 반복되다 보니 오랜만에 제정적으로 위기감이 닥쳐왔다. 나름 야심 차게 질렀던(?) 바이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판매가 부진하게 되면서 매출을 바로 늘지 않고, 이미 물건 값은 비싼 가격을 다 지불했다 보니 자금 순환이 여유롭지 못해 바로 문제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다다랐다. 진짜 몇 번의 실수와 불운이 반복되었을 뿐인데 이것들이 한꺼번에 터지다 보니 위기가 바로 닥쳐오더라.
카드값 결제일은 닥쳐오는데 통장잔고가 차는 속도는 더디고. 최대한 상품 업데이트도 빨리 하고 제품 포장/배송도 빨리해서 빠르게 자금 순환이 되도록 하고(참고로 네이버스토어는 고객이 수령 후 구매확정까지 완료해야 판매자에게 돈이 입금된다), 조금씩 욕심부렸던 주문 건들도 거품을 빼는 데에 주력했다. 그렇게 며칠 머리를 꽁꽁 싸매며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노력한 끝에 정말 다행히도, 모든 카드 결제일에 맞춰 결제 대금을 문제없이 입금할 수 있었다. 물론 요즘에야 카드사에서 몇 달 정도는 쉽게 이월(리볼빙)을 해주기는 하지만, 사회 초년생 시절 리볼빙의 무서움을 제대로 겪어봤던 탓에 카드값을 이월시키는 건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는 느낌이라 사실상 없는 선택지로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 절대 리볼빙은 안됩니다. 걷잡을 수가 없어요).
오랜만에 위기 아닌 위기를 겪으면서 다시금 초심을 떠올려 보게 됐다. 내 취향이 사실 아닌데 확보만 하면 팔릴 것 같아 오버해서 주문한 제품들. 그런 식으로 주문한 제품들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니 점점 확장된 대혼돈의 멀티버스까지. 취향을 확장하는 것은 괜찮지만, 판매만을 고려해 카테고리와 장르를 확장하는 건 말 그대로 머지않아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번 위기로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 누가 봐도 확보만 한다면 판매는 따놓은 당상의 제품이지만 취향이 아닌 제품은 과감하게 주문을 포기했고, 한동안은 오히려 취향을 확장하기보다 기존의 색깔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아이템 수급에 주력하고자 한다.
솔찬히 위험했지만, 나태해질 수 있는 시점에서 큰 피해 없이 좋은 경험이 됐다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