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일만 하게 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강요하거나 독촉하지도 않는데 나 혼자 엄청 끙끙 앓는 일들이 있다. 고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프리랜서 생활도 꾸준히 함께 해왔었는데, 오히려 직장을 관두고 자영업을 하면서부터 (그것도 영화와 관련된 본격적인 일을 하면서도) 글 쓰는 일이 정말 더 어려워졌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과 글감들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예전보다 훨씬 착수하기가 어렵고, 어렵게 착수해도 끝을 내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늘었다. 모든 글 쓰는 이들이 그렇겠지만, 머릿속에 떠돌던 생각들을 손가락으로 풀어내는 스타트 지점은 항상 어렵다. 그러나 일단 시작만 하면 대부분 앉은자리에서 글을 한 번에 마무리 짓는 편이었고 중간에 멈추거나 포기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요새는 어렵게 시작한 글도 종종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늘었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으로 노트북 앞에 앉는데, 첫 삽을 뜨는 것이 어렵다 보니 글쓰기를 포기하고 결국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늘었다. 내 일이라는 게 주로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어려운 글쓰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일하기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업무를 보는 것이 환기에 그치기만 하면 좋은데, 일을 또 집중해서 하다 보니 일을 마치고 나면 안 그래도 쉽지 않은 글쓰기의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 또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오늘도 똑같이 반복되기 직전이었는데, 다행히도 뭐라도 쓰는 것으로 돌아왔고 이 만큼이나 썼다.
예전에는 글 쓰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일 때도 있었다. 하루에 몇 개씩 다른 주제의 글을 뚝딱 완성해 내기도 하고, 전문이 아닌 분야의 글 의뢰도 빠르게 공부해서 일정 수준의 글을 써내기도 했다. 그것도 몹시 고된 회사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퇴근한 뒤에 말이다. 요새는 하도 글이 안 써지다 보니 오죽했으면 일부러 일을 훨씬 더 고되게 하고 늦게 퇴근해볼까 싶은 생각도 종종 한다.
또 글이 하도 안 써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현실이 내 어깨를 자주 두드린다. 무엇이든 강박으로 느끼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지만, 지금 내게 이 강박마저 없다면 마치 껍데기만 남게 될 것 같은 공포감이 현실이 될 것만 같다. 어쩌면 하고 싶던 일을 말 그대로 '일(work)'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또 다른 업무 외적인 일이 간절한 걸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의 강박과 간절함. 이 두 가지에서 하루빨리 해방되었으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처럼 생각하는 대로 술술 써지는 나로서 해방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