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야.
긴 회사 생활. 돌이켜 보니 사회 초년생 시절을 제외하고는 항상 회사 업무 외적인 일로 영화와 함께 했던 것 같다. 최근 다시 열린 싸이월드에 접속했다가 아주 오래전 월간지들에 기고했던 글들을 다시 보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초중반에 어린 나이였고 (다른 필자들은 대부분 30대 중반~40대였던 것 같다) 이렇다 할 커리어도 아직 확고히 생성되기 전이었는데 다들 뭐를 보고 나를 써줬는지 궁금하다(감사하다). 오래전 글들을 다시 보며 느끼는 거지만 몇몇은 지금보다 잘 쓴 글들도 있고, 전반적으로 아주 열심히 썼다는 게 눈에 보인다. 한 잡지에 소속된 기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몇 곳의 월간지에 기고하다 보니 써야 하는 원고의 수가 적지 않았는데, 진짜 열정적으로 썼다는 것이 지금 봐도 느껴진다. 물론 지금 보면 고치고 싶은 글들도 가득이지만, 그 에너지만은 결코 다시 따라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게 직장을 다니며 프리랜서로 영화 글을 써왔을 때도 나는 분명 외부인이었다. 영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명확한 직함과 세계가 있지만, 나는 가끔은 칼럼니스트, 가끔은 기자, 가끔은 블로거 등으로 불리며 항상 외부인의 성격으로 함께 했던 것 같다. 그냥 글만 보낼 때는 잘 느껴지지 않는데, 가끔 행사가 있어서 나가게 되면 매번 뻘쭘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군에도 쉽게 끼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다.
영화 가게를 열고 운영하는 요 몇 년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직업 가운데 '영화 굿즈샵 사장'은 없다 보니 여전히 나는 아웃사이더다. 영화 관련 굿즈를 만들거나 판매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기본적으로 디자이너, 제작사, 수입사, 영화사 등 다른 직업들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근본 세계가 있지만 나는 영화 굿즈샵이 유일한 현업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뭔가 섞이기가 쉽지가 않다 (책을 내고 글도 가끔 쓰니 작가에 끼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작가 업계(?)에서는 또 굿즈샵 하는 사람이 책도 낸 경우라 또 다르게 분류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직 책도 개인적인 에세이 한 권 (그것도 굿즈샵 운영과 관련된)이 전부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부담스럽기도 하고.
얼마 전 업무 관련해서 미팅을 하다가 우연히 이런 대화를 나눴다.
'대표님, 영화 수입도 한 번 해보시죠. 지금 하시는 일이랑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잘하실 것 같아요'
워낙 제품 수입을 이런저런 나라에서 하고 있다 보니 영화 수입도 잘할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셨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일이라 조금은 신선했다. 결국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들은 자기 극장을 갖거나 나만의 영화를 만드는(연출) 일일 텐데, 나도 이런 것들은 막연하게 꿈꿔 왔지만 영화를 수입하는 일은 한 번도 직접 해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뭐 언젠가 직접 영화를 수입하는 일을 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영화 수입사 대표라는 확실한 신분이 생기겠지.
무언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홀로 하는 건 좀 쓸쓸하긴 하다. 그래 놓고 누군가 하고 싶다고 물어보면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