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쉬타카 May 18. 2022

나의 해방일지

추앙한다. 이 옅은 위로.

© JTBC


나의 해방일지 (2022)

추앙한다. 이 옅은 위로.


언젠가부터 SNS에서 '추앙'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려왔다. 자꾸 '추앙' '추앙'하길래 나는 처음 드라마  등장하는 일종의 새롭고 귀여운 표현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단어 그대로의 '추앙'이더라. '추앙'이라는 단어와 함께 경기도민의 애닮은 삶을  표현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경기도민들만   있는 디테일이 등장한다고 해서, 트렌디하고 코믹한 드라마  줄로만 알았다. 그래도 덥석 관심이 가지는 않았었는데, 채널을 돌리다 스치듯 보게    김지원 배우의 무표정한 얼굴이 결국  드라마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현실에선 너무 자주 보고 자주 짓게 되는 표정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의외로 흔히   없는  무표정. 그렇게 무표정에 끌려 보게  '나의 해방일지' 좋은 의미로  이상한 드라마였다.


아마도 많은 드라마 팬들은 이 작품이 '나의 아저씨 (2018)'를 쓴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을 텐데, 나는 그 수많은 호평들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아직까지 '나의 아저씨'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도 선뜻 손이 가질 않았었다. 그런데 '나의 해방일지' 1,2화 정도를 보고 나서 바로 알게 됐다. 왜 '나의 아저씨'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 JTBC


박해영 작가의 이야기는, 작법이라기보다 화법은 조금 달랐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추앙'이라는 현실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비롯해, 역시 현실에서는 혼잣말로도 잘 생각하지 않을 말들을 인물들이 대사로 뱉어내는데 놀랍게도 이질감이 없다. 작가(화자)의 입장에서 의미 전달을 위해 반드시 어떤 단어나 표현을 (설령 너무 어렵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더라도) 써야 하는 경우는 있는데, '나의 해방일지'의 대사들은 그런 작가의 의도에서 발현되었다기보다는 정말로 그 단어와 대사들이 평소 생활언어처럼 단숨에 받아들여질 정도로 작품의 상징이 됐다.


단어 선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표현에 있어서도 그렇다. 극 중 박진우 이사가 염기정과의 대화 뒤 했던 말처럼 '왜 저렇게 단순한 걸 몰랐지?' 싶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100%의 순도로 전하는 솔직한 말들도 인상적이다. 이런 화법의 작품들이 이전에 없던 것은 아닌데 그 작품들은 대부분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코믹한 요소로 활용되는 것에 그친 반면, '나의 해방일지'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마음과 현실을 100% 대변한다. 그래서 이 직설적이고 순도 높은 대사들이 마치 진짜 생활 언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실제 생활에서 나도 모르게 사용하게 될 정도로). 아! 그래서 사람들이 '추앙' '추앙' 했구나.


© JTBC


'나의 해방일지'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건, 모두가 마음 한편에 갖고 있지만 대부분 마음 밖으로 잘 꺼내어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몹시 사적이지만 사실은 사회 현상에 가까운 '마음'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매번 남들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서 나와야 하고, 출퇴근에 왕복 3시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내 모든 일들이 중심에서 멀리 존재한다는 이유 때문인 것만 같은 것도 중요한 디테일이지만, 수많은 관계 속에서 그 관계를 유지하고 보통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의 고단함을 이 작품은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몹시 애쓰고 있는데 한 발 물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왜 이걸 위해 애쓰고 있지?'라고 반문하게 되는 일들에 지쳐버린 많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 작품이 특별한 건 이런 고단함을 끄집어낸 자체가 아니라 섣불리 위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드라마 속 해방 클럽의 원칙처럼 말이다. 반드시 행복해야 하거나 더 나아가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반드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냥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단 괜찮다는 이 드라마의 '마음'은 옅은 위로가 된다. 애쓰지 않아도 문득 느껴지는 옅은 위로.


그렇게 참 이상한 드라마를 추앙하게 됐다.




1. '일종의 고백'은 본래도 정말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이 작품에 삽입되어 더 좋아하게 됐다.

2. 남자 캐릭터를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민기 배우가 연기한 염창희 캐릭터는 가끔(아니 자주) 귀엽더라.

3. 손석구 배우가 연기한 구 씨 캐릭터는 진짜 이상한(매력의) 캐릭터다. 깡소주를 부르는 연기. 이 드라마에서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구 씨에게 조폭/마담 같은 과거 말고 다른 과거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이 유일하게 걱정되는 지점이다. 너무 전형적이고 자극적인 결말이 될까 봐.

4. 웃음 포인트가 없지 않은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웃긴 드라마도 근래 없었던 것 같다. 우스운 BGM도 없이 (CG는 조금 있었지만;;)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웃게 되는.

5. 주요 인물 네 명 외에도 모든 캐스팅이 완벽에 가깝게 만족스럽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들이 주요 인물 주변에만 머무르고 있지 않은 것도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