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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May 07. 2022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 marvel studios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MCU의 수많은 캐릭터 (앞으로 새로 나올 캐릭터들까지 생각하면 정말 많다)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선호하는 캐릭터들이 있기 마련인데,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는 닥터 스트레인지다. 코믹스 속 이미지와 설정 만으로도 호기심이 있던 캐릭터였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연결되면서 호기심은 바로 애정이 됐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솔로 무비 속편인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를 기대했던 건 최애 캐릭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감독이 샘 레이미였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겐 MCU이전 토비와 함께 했던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샘 레이미는 누가 뭐래도 호러 장르의 마스터다. 그런 장기를 이전 히어로 영화에서도 간간히 녹여냈었기 때문에, 샘 레이미가 연출하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몹시 기대됐다. 


엄밀히 따지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완다 막시모프 (스칼렛 위치)다. 이야기의 갈등 구조와 관객이 감정적 공감대를 느낄 만한 대상이 누구였느냐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세상을 (곧 나 아닌 타인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했으나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던 무력함을 겪은 뒤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극도의 방어기제로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창조했으나 결국 그 마저도 이루지 못했던 (완다비전) 완다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완다비전'을 보지 않는다면 완다의 갈등과 감정에 100%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주 짧게 등장하는 꿈 장면 등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완다는 왜?'라는 질문이 극을 이끌어 가는 주된 동력이라는 점에서 '완다비전'의 감상은 필수 조건에 가깝다. 실제로 '완다비전'을 몹시 감정적으로 감상했던 나로서는, 이 영화에서 완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두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 만으로도 감정이 심하게 동요됐다. 이렇듯 '완다비전'의 이야기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어쩔 수 없는 필수 요소이며, 완다가 스칼렛 위치가 되어 행하는 모든 행동에 이유가 된다. 


© marvel studios


스칼렛 위치 오리진 영화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서브 캐릭터로 등장한 구성이었다면 더 자연스러웠겠지만, 반대의 형태이다 보니 스토리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솔로 무비의 주인공으로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문제에 개입하고 해결하려 애쓰지만, 그 갈등과 원인의 주체가 아니다 보니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엔 가끔 힘에 부치곤 한다. 이야기의 구조로만 보자면 이 영화는 완다 막시모프의 이야기와 닥터 스트레인지의 이야기 비중이 애매한 수준으로 얽혀있다. 완다의 감정적 갈등이 주된 요소지만 닥터 스트레인지가 주인공이다 보니 많은 부분을 '완다비전'에게 기댄 채 전개된다. 또한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크리스틴과 관련된 자신 만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완다의 이야기가 주된 요소이다 보니 더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완다비전'을 보지 않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좀 더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이야기는 어딘가 제한된 느낌이고, 완다의 스칼렛 위치는 감정적으로 동화되기에 조금은 갑작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완다비전'이 없었다면 완다의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 아마 인피티니 워의 마지막 부분이 이 영화에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의 구조적 모호함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샘 레이미의 연출이다. 샘 레이미가 연출한다고 했을 때 하나 걱정되었던 것은 12세 관람가라는 점이었는데, 이 관람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수위를 선보인다. 몇몇 장면들은 고어의 수위만 조절했을 뿐이지 연출적으로는 평소의 샘 레이미 영화와 다를 것 없는 호러적인 긴장감과 재미를 보여준다. 스칼렛 위치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를 오가며 (때로는 죽은 자와 산자를 오가며) 벌이는 시퀀스들은 이런 호러적 긴장감이 가미되어 있어 훨씬 더 흥미롭다. 아마 다른 MCU에 최적화된 감독이었다면 이 시나리오의 부족함을 유머나 화려한 액션 시퀀스로 채웠을 텐데, 그것도 나름대로 좋을 수 있었겠지만 나는 샘 레이미의 방식이 더 이 이야기에 맞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marvel studios


그리고 다른 이야기지만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멀티버스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일종의 만능열쇠로 작용될 우려가 있었는데, 다행히 제한적으로 활용된 편이 더 좋았다. 물론 앞으로 MCU는 이 무궁무진한 만능열쇠를 다시 꺼내들긴 하겠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관객들이 영화 자체보다는 '누가 등장할까?'에 더 집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가끔 그리고 작은 비중으로 보너스처럼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끝까지 톰 크루즈의 아이언맨 나올지도 몰라 두근두근 한 사람, 나야 나!).


또 하나 다른 이야기를 보태자면 브루스 캠벨이 등장하는 두 번째 쿠키 영상은 실로 통쾌했다. MCU 영화에서 엔딩 크래딧 이후로 짧게 등장하는 쿠키영상이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면서부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일단 쿠키 영상은 일종의 보너스로 소소한 재미 정도를 주는 역할을 하면 되는데, 여기에 다음 편이나 다른 캐릭터에 대한 힌트나 정보를 담아내다 보니 관객들로 하여금 무슨 새로운 정보가 있을지 극도로 집중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끔 그 정보가 대단한 것이 아닐 경우 영화를 잘 보고도 마지막에 한숨 쉬며 나오는 경우들이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본래 쿠키영상을 엔딩 크래딧 맨 뒤에 넣는 이유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관객들을 붙잡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과 그 배경에 흐르는 영화 음악까지 끝까지 즐기길 바라는 창작자들의 의도가 담긴 일종의 바람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무도 크래딧을 보거나 음악을 듣지 않고 각자 휴대폰을 하는 등 다른 일을 하다가 쿠키가 시작되면 각 잡고 몇 초간 집중하는 요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쿠키 영상은 (또 한 번 말하지만) 실로 통쾌했다. 그것이 샘 레이미의 페르소나인 브루스 캠벨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것도 좋았고, 대놓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관객에게 말하는 형식이어서 더 좋았다 (그리고 관객들은 아무 정보도 힌트도 없어서 대부분 실망했지만). 


© marvel studios


1.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더 보고 싶어진 영화 두 편이 있는데, 하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완다 막시모프의 솔로 무비고, 다른 하나는 샘 레이미의 전작 '드래그 미 투 헬'이다. '드래그 미 투 헬' 정말 재밌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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