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사랑스러운 영화
아카데미 시즌이 되면 후보에 올랐다는 이유로 혹은 수상했다는 이유로 존재를 알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국내 개봉(공개)이 늦어 볼 기회가 없던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이 작품 '타미 페이의 눈 (The Eyes of Tammy Faye, 2021)'도 제시카 차스테인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뒤늦게 알게 된 작품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제시카 차스테인 외에 앤드류 가필드가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아카데미를 보고서 알게 됐다. 이렇게 두 배우 때문에 알게 된 이 영화는, 그 두 배우의 비중이 사실 전부인 영화였다.
이 영화는 7,80년대 미국 내에서 세계적 종교 전도 방송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타미 페이 바커와 짐 바커의 실화를 다룬다. 영화에는 당시 실제 뉴스 장면들을 지연스럽게 삽입하기도 했는데, 미국 내에서는 모든 언론에 노출이 되었을 정도로 유명했던 사건이었지만 이 실제 사건을 몰라도 영화를 보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종교 방송과 관련된 스캔들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타미 페이와 짐 바커의 이야기는 여느 록스타나 성공한 사업가 등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흥망성쇠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타미 페이의 눈'은 영화적으로 완성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실제 사건이 담고 있는 이면의 이야기나 사건의 정수를 파고들지도 않고, 극적으로 전개과정이 특별히 흥미롭거나 긴장이나 공감할 만한 클라이맥스도 부족한 편이다. 엄청난 유명세를 떨쳤던 실제 인물과 그들의 스캔들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한 영화적 재미를 기대할 수 있지만, 조금은 밋밋하게 마무리된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그건 바로 이 영화를 알게 된 이유, 선택 하게 된 이유였던 두 주연 배우 때문이다. 타미 페이 파커와 짐 파커를 각각 연기한 제시카 차스테인과 앤드류 가필드는 이 차려진 밥상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사실 아카데미 수상이 말해주듯 이 작품과 타미 페이라는 실존인물에 대한 연기는 노골적으로 아카데미를 노려볼 수 있는 구조였다. 독특한 이력의 실존 인물을 그와 거의 흡사한 모습의 분장을 동원해 펼치는 메서드 연기는 아카데미가 꾸준히 선호하는 연기였기 때문이다. 주연상이 그 해 가장 기술적으로 훌륭한 연기를 잘하는 배우에게 주는 상이라면 차스테인은 부족할 것 없는 연기를 펼쳤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연기를 제외하면 사실 남는 것이 없는 작품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타미 페이로 분한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는 이 작품 자체나 다름없다.
이 작품 바로 이전에 '틱, 틱... 붐!'이 있었기 때문에 (물론 그 사이 다른 유니버스 영화가 한 편 있었지만)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짐 파커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한 편 그냥 앤드류 가필드 같았다. 뭐랄까, 끝까지 짐 바커라는 인물보다는 앤드류 가필드가 연상될 정도로 (살짝 키아누 리브스의 경우처럼)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이질감의 요소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더 좋았다. 앤드류 가필드도 제시카 차스테인만큼은 아니지만 이 캐릭터를 위해 조금은 특수 분장을 가미하고 있는데, 여기에 후반부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늘게 된 모습까지, 여전히 분장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이 든 짐 바커가 아니라 노인 분장을 한 앤드류 가필드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데, 그 점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우의 연기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건 보통 단점이 될 수 밖에는 없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장점이 된다. 실제 타미 페이와 완전히 유사한 모습으로 분한 제시카 차스테인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타미 페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외모와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앤드류 가필드의 짐 바커와는 다른 이유로 타미 페이도 영화 내내 묘한 이질감을 준다.
우습지만 이런 이질감에도 이 영화가 좋았던 건 두 배우가 몹시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 두 인물이 처음 만나 데이트를 나누는 장면에서부터 이 사랑스러움에 그냥 빠져들게 된다. 두 인물 자체가 이질감이 느껴지고 상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행동들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두 캐릭터에 대한 사랑스러움인지 아니면 두 배우에 대한 사랑스러움인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랑스러운 건 변함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이 영화는 다른 의미로 더 흥미로워진다. 극 중 두 인물의 사이가 좋을 땐 이른바 서로 '능청'떠는 시퀀스들이 많은데, 그 능청이 '왜 저래?'라는 핀잔보다는 여전히 '사랑스러워'를 외치게 된다. 진짜 유치한 장면인데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는 내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의미에서 앤드류 가필드의 팬이라면 '틱, 틱... 붐!' 만큼이나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앤드류 가필드가 가장 사랑스럽게 등장하는 영화는 의외로 이 영화일지 모른다 (심지어 바람도 피우고 범죄도 저지르는 인물인데도 말이다). 내게 있어 '타미 페이의 눈'은 실제 스캔들을 그린 드라마로서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지만, 앤드류 가필드와 제시카 차스테인의 사랑스러운 연기(얼굴)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감을 준 이상한, 하지만 사랑스러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