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지 못한 이들의 쓸쓸한 여정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배우들, 한국 스텝들과 함께 만든 한국영화 '브로커 (Broker, 2022)'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감독의 전작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만약 감독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고 보았다면 고레에다 감독 같은 느낌이 나는 한국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왜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과 달랐고, 어떤 점이 달랐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어쩌면 이 영화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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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고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은 '원더풀 라이프 (ワンダフルライフ, 1999)'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 歩いても, 2008)' '공기인형 (空気人形, 2009)'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奇跡, 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 (海街diary, 2015)'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의 공통점을 말하자면 모두 사유의 깊이 혹은 여지를 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특별한 사건을 다룰 때도 물론이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묘사할 때도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관객이 충분히 스스로 사유하고 깊이 있는 자신만의 생각을 끌어올릴 수 있을 만한 완벽한 토대를 제공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포착해낸 순간들은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순간들이 많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속 어떤 장면들을 좋아하고, 어떤 장면들이 기억에 각인되었는가를 떠올려 보면 이는 더 분명해진다.
그런데 '브로커'는 이런 사유의 여지를 충분히 주는 전작들과는 완전히 다른 화법의 영화다. 영화 속에 관객(혹은 감독)의 입장에서 말하는 인물이 분명하고 (수진 - 배두나 분), 이야기도 결말은 조금 열려 있는 여지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완전히 마감되어 있는 구조다. 특히 가장 다른 점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아주 직접적인 방식(대사 등을 통해)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말하자면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그 어떤 직접적 방식보다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감독의 전작들과는 달리, 아주 직접적인 방식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극 후반부에 주요 인물들에게 소영 (이지은 분)이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은 분명 감동적인 장면이지만,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임을 생각하면 조금은 갸우뚱할 정도로 이질감이 드는 순간이다.
이렇듯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브로커'를 보고 나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본래 TV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이라는 점이 새삼 떠올랐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카메라를 가져가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고, 그 가운데서 왜 이런 목소리가 중요한지 현실에 이슈를 던지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감독이었다. 그런 면에서 전작인 '아무도 모른다 (誰も知らない, 2004)'와 이 영화는 정확히 같은 문제의식 하지만 다른 화법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자신 만의 영화 언어로 묘사하고 조명하는 것에 집중했던 '아무도 모른다'와는 달리, '브로커'는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회 문제를 주된 모티브로 활용하는 동시에 이 문제의식을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직접적 메시지로 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감동적인 순간이 아니라, '베이비 박스'의 존재를 두고 베이비 박스가 있기 때문에 아이가 더 쉽게 버려진다라는 논리와 베이비 박스마저 없으면 더 많은 아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될 거라는 논리가 대사로 부딪히는 장면이었다. 치열하게 논리로 맞붙는 이 짧은 순간을 통해 그럼 현실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처럼 관객에게 묻고 말하고 있는 이 영화는 이 방식을 선호하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떠나서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과 이를 둘러싼 사회 문제들을 분명히 환기시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장 관심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가족' 영화로서의 '브로커'는 이번에도 연속성의 범위 내에 있다.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 건 여정에 동행하게 된 인물들 모두가 사실은 한 명의 인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거나, 과거, 미래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동수 (강동원 분)는 소영에게서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상현 (송강호 분) 역시 이 여정이 더 특별한 건 이혼 후 점점 멀어지고 있는 자신의 딸의 모습과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하고, 어쩌면 자신의 가족에게서는 이룰 수 없었던 행복한 결말을 대신해서 이뤄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 다섯 명의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수시로 거울이 되기 때문에 이 여정은 함께 행복을 추구해 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삶에서 결핍된 행복들을 또 다른 나 이기도한 타인을 위해 채워주려는(본인 삶의 결핍을 채우는 건 끝내 스스로 포기한) 조금은 쓸쓸한 여정이라는 점에서 여운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