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쉬타카 Jun 15. 2022

세브란스 : 단절

스스로 자신을 잊기로 한 사람들

© apple tv+


세브란스 : 단절 (severance, 2022)

스스로 자신을 잊기로 한 사람들


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로 가장 먼저 손이 갔던 작품은 '파친코'도 아니고 바로 이 작품 '세브란스 : 단절 (severance, 2022)'이었다. 처음 이미지와 예고편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떠올랐다. 이 둘 중 한 명, 혹은 둘이 함께 한 작품이라고 믿을 만큼 비슷한 디자인과 세계관, 이야기였는데, 첫 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의 감독이 배우로 더 유명한 벤 스틸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배우로 더 유명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출연작은, 그가 주연과 연출을 동시에 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쥬랜더, 트로픽 썬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등). 아직도 감독 벤 스틸러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이들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브란스'는 그의 뛰어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잘 정돈된 스릴러 드라마다. 


처음 이 작품에 관심이 갔던 건 당연히 그 시놉시스 때문이었다. 일종의 시술을 통해 직장 생활과 사생활의 기억이 분리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시놉시스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서 무언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 장르적으로도 아주 매력적인 소재인데, '세브란스'는 이 소재를 생각보다 건조하게 전개시킨다. 시즌을 다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극적인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차분하고 건조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맞물려 이상하기만 하고 좀 심심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데 전혀 밋밋함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이 특이하지만 심심한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 apple tv+


결과적으로 직장생활의 기억과 직장 이외의 기억이 나뉜다는 설정은 여러 가지를 가능하게 했다. 일단 단순한 기억의 분리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아의 분리라고 볼 수 있는데, 기억의 부제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것이 강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억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왜 스스로 기억을 분리하기로(잃어버리기로)했을까 라는 질문은 그 방법을 써서라도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안타까운 의문이나 혹은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게 만드는데 이것들은 마지막 회에 가서 극적인 반전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사실상 자아가 분리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이 이야기는 '나'를 찾는 여정이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의 나는 직장 밖의 사생활의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이었든 간에 결국 나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되어버린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제로 상태에서 나에 대해 다시 궁금해하고 알아가게 되는 (알아내고자 하는) 계기가 된다.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강제로 시술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행동은 어쩌면 본인의 의도와 정반대로 일을 거스르며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바로 그것이 의도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해방을 야기시킨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이기도 하다.


© apple tv+


미묘하게 긴장되지만 조금은 여유롭게 감상했던 에피소드들과는 달리 시즌 1의 마지막 회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휘몰아친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에 끝을 내버린다.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아니, 이걸 여기서 끊는다고?!'라고 말하게 될 정도로. 다행히 시즌2가 이미 제작 중이라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아마 두 번째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브로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