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신을 잊기로 한 사람들
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로 가장 먼저 손이 갔던 작품은 '파친코'도 아니고 바로 이 작품 '세브란스 : 단절 (severance, 2022)'이었다. 처음 이미지와 예고편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떠올랐다. 이 둘 중 한 명, 혹은 둘이 함께 한 작품이라고 믿을 만큼 비슷한 디자인과 세계관, 이야기였는데, 첫 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의 감독이 배우로 더 유명한 벤 스틸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배우로 더 유명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출연작은, 그가 주연과 연출을 동시에 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쥬랜더, 트로픽 썬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등). 아직도 감독 벤 스틸러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이들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브란스'는 그의 뛰어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잘 정돈된 스릴러 드라마다.
처음 이 작품에 관심이 갔던 건 당연히 그 시놉시스 때문이었다. 일종의 시술을 통해 직장 생활과 사생활의 기억이 분리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시놉시스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서 무언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 장르적으로도 아주 매력적인 소재인데, '세브란스'는 이 소재를 생각보다 건조하게 전개시킨다. 시즌을 다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극적인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차분하고 건조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맞물려 이상하기만 하고 좀 심심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데 전혀 밋밋함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이 특이하지만 심심한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결과적으로 직장생활의 기억과 직장 이외의 기억이 나뉜다는 설정은 여러 가지를 가능하게 했다. 일단 단순한 기억의 분리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아의 분리라고 볼 수 있는데, 기억의 부제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것이 강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억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왜 스스로 기억을 분리하기로(잃어버리기로)했을까 라는 질문은 그 방법을 써서라도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안타까운 의문이나 혹은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게 만드는데 이것들은 마지막 회에 가서 극적인 반전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사실상 자아가 분리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이 이야기는 '나'를 찾는 여정이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의 나는 직장 밖의 사생활의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이었든 간에 결국 나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되어버린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제로 상태에서 나에 대해 다시 궁금해하고 알아가게 되는 (알아내고자 하는) 계기가 된다.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강제로 시술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행동은 어쩌면 본인의 의도와 정반대로 일을 거스르며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바로 그것이 의도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해방을 야기시킨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이기도 하다.
미묘하게 긴장되지만 조금은 여유롭게 감상했던 에피소드들과는 달리 시즌 1의 마지막 회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휘몰아친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에 끝을 내버린다.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아니, 이걸 여기서 끊는다고?!'라고 말하게 될 정도로. 다행히 시즌2가 이미 제작 중이라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아마 두 번째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