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로 완벽해지는 영화
토니 스콧의 1986년 작 '탑 건 (Top Gun, 1986)'은 당시에도 이미 스타였던 톰 크루즈라는 배우를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한 대표작이었다. 그가 연기한 매버릭이라는 캐릭터는 제리 맥과이어, 이던 헌트, 잭 리처 등 톰 크루즈를 설명하는 여러 캐릭터들 이전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였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이 톰 크루즈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토니 스콧의 '탑 건'은 큰 사랑을 받고 깊이 각인되긴 했지만 사실상 영화적으로 평가했을 때 (특히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보게 되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다. 물론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 오락영화'라는 건 결코 나쁜 평가가 아니다. 오히려 요즘처럼 전형적이고 깔끔한 오락영화를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탑 건 (1986)'은 톰 크루즈라는 스타와 전투기 액션이라는 장점을 빼면 구조적으로 단순하고 평범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려 36년 만의 속편인 '탑 건 : 매버릭 (Top Gun: Maverick, 2022)'은 전편의 대부분을 답습하듯 오마주하고 깊게 연결되어 있다. 넓게 보자면 단순한 구조도 크게 다르지 않고, 장점이었던 톰 크루즈와 전투기 액션도 그대로 존재한다. 하지만 '탑 건 : 매버릭'은 전편의 가치마저 끌어올릴 정도로 완벽한 속편이 됐다. 마치 1986년 작 '탑 건'에게 처음부터 속편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톰 크루즈다. 본래도 '탑 건'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매버릭 역의 톰 크루즈는 3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배우가 되었고,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성룡 등이 그랬던 것처럼 유일하게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가진 유일무이한 배우가 됐다.
'탑 건 : 매버릭'이 흥미로운 건 마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속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스크린 밖의 배우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시나리오 자체가 가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탑건을 차석으로 수료하고 교관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 이후부터 매버릭의 지난 시간들을 알지 못하지만, 속편에서 별다른 그간의 일들을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그 세월을 고스란히 함께 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실 그건 매버릭의 지난 시간들이 아니라 배우 톰 크루즈의 시간들을 함께 했기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탑 건) 밖에서 벌어진 톰 크루즈의 다른 영화들과 그간의 세월들이 매버릭의 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 장애물이 되기는커녕 적극적인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배우 톰 크루즈가 걸어온 길은 전편을 그대로 승계한 '탑 건 : 매버릭'의 드라마와 완전히 맞아떨어지면서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최첨단 무인 전투기를 도입하려는 해군과 파일럿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증명해 내려는 매버릭, 그리고 영화의 핵심 작전 속에서도 최신 기종의 전투기보다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는 파일럿의 존재는, 이제는 더 이상 실제와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한 CG 기술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영화계에서 여전히(아니 오히려 갈수록 더) 직접 몸으로 위험한 스턴트 연기를 펼쳐내는 배우 톰 크루즈와 겹쳐지며 드라마의 깊이를 더한다. 다시 말해 관객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매버릭이 아닌 톰 크루즈를 보게 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 완벽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탑 건'은 전편과 속편 사이 36년이라는 긴 세월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마치 1부, 2부와 같은 이야기로 가급적 전작인 1986년작 '탑 건' 감상이 필요한 작품이다. 구조상 '탑 건 : 매버릭'은 전형적인 스승과 제자, 유사 부자관계를 그린다. 마일즈 텔러가 연기한 '루스터'는 전편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매버릭의 가족과도 같은 친구 '구스'의 아들인데, 이들의 갈등과 트라우마는 온전히 전편에 기인한다. 속편의 주요 모티브인 매버릭과 루스터의 관계가 전편에 기인하고 있다는 건 전편을 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왜냐하면 속편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갈등과 트라우마는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즉, 속편에서 매버릭과 루스터가 겪는 갈등과 트라우마는 전편의 반복이라기보다는 연속이다. 전편에서 발생한 구스의 죽음으로 인해 매버릭은 트라우마를 겪고 루스터와는 갈등을 겪게 된다. 속편에서는 새롭게 발생한 갈등 요소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실상 없다. 모두 전편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속편에서는 해결 만이 남았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번 작품을 더 깔끔한 오락영화로 만든다. 전편으로부터 이어온 갈등 요소는 모두 해결하고 새로운 문제는 더 이상 발생시키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이 긴 여정을 함축적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관습적으로 따르는 장면/설정들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바로 그 관습에 등장하는 전초적 대사가 등장해 불안하게 했지만 새로운 문제를 만들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더 좋았다).
이제와 고백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톰 크루즈의 영화 가운데 '탑 건'은 없었다. 톰 크루즈의 거의 모든 영화를 보았고 아주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탑 건'은 그의 푸릇푸릇한 생기가 남아 있다는 것 외에는 큰 인상을 주지 못한 작품이었다 (이건 세대의 차이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탑 건 : 매버릭'은 톰 크루즈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순 없어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품이 됐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톰 크루즈로 완벽해지는 영화인 동시에, 톰 크루즈 그 자체인 영화 중 손꼽을 만한 영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