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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ul 18. 2022

132. 슬럼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통은 슬럼프라는 단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기 전에 끝나거나 끝내버리곤 하는데, 이번에는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글을 잘 못쓰게 된지는 꽤 오래됐는데 그래도 손이 더 굳기 전에 꾸역꾸역 써내곤 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에는 공백기가 제법 긴 편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대부분 영화 관련 글이다 보니 보통은 영화 자체를 별로 보지 못해 쓰지 못하거나, 별로 쓸 만한 이야기가 없는 영화들 뿐일 때 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나름 부지런히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봤는데도 잘 쓰지 못하고 있다. 아니, 반대로 잘 쓰지 못하니까 보는 거라도 부지런히 챙겨보자는 생각에 열심히 봤던 것 같다.


최애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좋았고, 시즌을 거듭할수록 더 좋아지는 <기묘한 이야기> 시즌 4도 흥미진진 가슴 뛰게 감상했다. MCU의 새 영화 <토르 : 러브 앤 썬더>는 조금 실망스러웠고, 몹시 기대했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도 조금은 아쉬운 편이었다. 아,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 3도 무언가 터질 듯 주저하다가 마무리된 느낌이 컸다. <문나이트>는 색다른 재미로 쉴 틈 없이 즐겼고, <더 보이즈> 시즌 3도 살짝 아슬아슬 한 지점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막 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스파이 패밀리>도 재미있게 보고 있고, 조금 뒤늦게 알게 된 <불멸의 그대에게>는 몹시 감동받아서 만화책도 바로 주문했다.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울고 웃으며 함께 하는 중이고.


평소 같았으면 하나하나 술술 써내려 갔을 작품들이 많은데 저 중에 단 한 작품에 대해서도 쓰지 못했다. 특히 <헤어질 결심>은 여러 번 썼다가 지웠을 정도로 아직도 계속 머릿속에 생각들이 맴돌고 있는데,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 이건 더 묵혀 두더라도 꼭 쓰고 싶다. 


이렇게 글 쓰는 게 잘 안 풀리게 되면 나 혼자 엄청 스트레스를 받곤 하는데, 그동안은 이와 별개로 가게일은 큰 문제없이 잘 풀렸던 편이라 슬럼프가 덜했다. 그런데 요즘은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온/오프라인 스토어의 매출도 조금씩 떨어졌고, 아주 오랜만에 금전적인 위기감도 살짝 느껴보는 중이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확실히 바이닐(LP) 붐은 끝나기 시작한 것 같고, 높아만 가는 달러 환율에 수입이 메인인 우리는 적지 않은 골치를 썩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음식 가격을 올리긴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쉽게 올릴 수도 없다는 시장 상인의 인터뷰가 남일 같지 않다. 


슬럼프가 살짝 굳은살처럼 정착(?)되다 보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조금씩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있다. 너무 전형적인 결론이지만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마이페이보릿에서 판매할 제품들을 소싱할 때 좀 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팔릴 만한 것보다 앞서 선택하고, 어디서나 잘 팔릴 만한 것들은 조금씩 덜어내고 있다. 글도 억지도 쓰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좋아하는 작품들, 그간 놓쳤던 영화들을 부지런히 챙겨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요 며칠 그간 타이밍이 안 맞아서 못 봤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작들 <세 번째 살인> <어느 가족> <파비안느의 관한 진실>도 단숨에 챙겨봤다. 


그렇게 다시 아주 천천히 속도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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