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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Aug 05. 2022

133. 현명한 결심이 되길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이번 주말 손님은 200분이 넘게 다녀가셨는데 구매하신 분들은 거의 없었어요"

"오늘 90여 명이 방문해주셨는데 구매하신 분은 2분이었습니다"


요 근래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각각 다른 가게들 SNS에서 보게 된 글이다. 요즘 들어 발생하는 경향이라기보다는 주로 작은 규모의 독립서점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흔히 겪는 일이라고 하니 일반적인(견딜만한)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다. 규모가 작은 곳일수록 존폐의 위기에 놓일 정도의 치명적 일에 가깝다.


'방문한 손님은 많았는데 매출은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흡사 난센스나 미스터리 퀴즈 같은 이 문제의 답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보통 이런 일을 겪게 되면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장이나 직원들은 '왜 제품이(이 경우 도서가) 팔리지 않는지'에 대해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많은 사장들은 대부분 1차적 원인을 본인 가게의 문제점(자책하는 것)에서 찾는다. 판매하는 제품들이 매력이 덜한지, 가격이 부담스러운지, 전시가 잘못되었거나 응대가 불친절했는지 등등. 치열하게 고민해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자 한다. 


그렇게 없던 문제도 찾아내 보완하고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나, 많은 경우로 이 문제는 안타깝게 해결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문제의 원인이 그 가게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손님 방문이 적었던 것도 아니고 가게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음에도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일까. 이미 눈치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겠지만, 그건 방문했던 대부분의 손님들이 애초에 구매를 할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경한다는 것은 보통 구매라는 행위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는 사전 행동인 경우가 많다. 내가 원하는 제품이 있는지 자유롭게 구경하다가 보면 원하는 제품을 찾아 구매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구매할 생각이 거의 없이 구경을 할 수는 있지만, 전혀 없이 구경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이 표현에 왜 이렇게 자신이 없는가 하면 전혀 구매의사 없이 구경하는 손님들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구경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구경하게 될 수도 있다. 구경하다 보면 구매하게 될 줄 알았는데 맘에 드는 것이 없어 구매하지 않을 수 있다. 너무 구매하고 싶어 구경했는데 막상 마음에 딱 드는 것이 없어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고. 너무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구경할 생각도 구매할 생각도 없었는데 덜컥 구매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즉, '아니 왜 살 생각도 없으면서 가게에 오는 거야?'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니까. 그런데 방문하는 손님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더군다나 독립서점이나 우리 같은 시네마 스토어처럼 필요한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취향의 제품을 파는 경우라면, 그리고 한두 명이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가게라면 더욱 그렇다.


작은 가게를 운영한 지 어느덧 4년이 되다 보니 저절로 생기는 능력들이 있다. 아마 다른 작은 가게 사장님들도 그렇겠지만 이제는 손님이 입장할 때 저 손님이 구매할지 안 할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사실 아주 높은 확률로 알 수 있다). 앞서 하루에 100명 가까이 방문했는데 구매한 손님이 2명 정도였다는 글이 있었다. 이 100명 가운데 대부분이 구매를 위해 방문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구매하지 않아 실제로는 2명밖에 구매하지 않은 것인데 기대 매출이 너무 적어 사장님이 글을 남겼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거다. 아마 100명 중 대부분이 전혀 구매 의사 없이 방문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남긴 글일 것이다. 


그러면 전혀 구매할 의사가 없는데 왜 그 많은 손님들은 방문했던 것일까. 우연히 혹은 일부러. 

우리는 관광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구매하는 분들의 대부분이 우연히 방문하는 터라 다른 경우지만, 수도권에 위치한 독립서점들의 경우 관광지가 아니거나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힘든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즉, 일부러 방문한 손님들의 비중이 더 많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손님들은 왜 '일부러' 방문했을까. 보통은 독립출판물을 구매하고 싶어 특별히 시간을 들여 방문했겠지만(그렇다면 좋겠지만), 다수는 본인의 SNS에 올릴 만한 예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근처 약속 시간까지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구매할 만한 책들의 리스트업을 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무언가 인스타 갬성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기에 작고 유니크한 공간들은 매력적인 곳이어서 자주 작은 독립서점들은 이런 '배경'의 목적으로 활용되곤 한다. 그리고 책은 마음에 들지만 내용만 확인 뒤 구매는 더 저렴한 온라인 대형서점에서 구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하기도 하고.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경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서점 주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손님의 대부분이 이런 손님이라면 그건 좀 견디기가 힘들다. 무인 가게라면 또 모를까. 몇 평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한두 명의 적은 인원이 일하는 가게들의 경우, 이런 손님들만 종일 오간다면 어지간히 멘털이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간 기운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작은 가게일수록 운영하는 사람의 멘털이나 에너지가 곧 그 가게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애초에 전혀 구매의사가 없는 다른 목적의 방문들이 많아질수록 운영자의 마음은 피폐해지고, 결국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조금은 나은 경우다. 일단 지방이자 관광지이기 때문에 구매 의사가 전혀 없이 일부러 다른 목적으로 방문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운영 초기에 사진 촬영 금지를 결정한 덕에 사진 촬영을 위한 방문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근처 맛집에 대기를 걸어두고 연락이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러 방문하는 분들도 적지 않고, 우연히 방문한 분들이 대부분이라 모르거나, 혹은 알고 나서도 사진 촬영을 하는 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도 우리는 이 가게의 존재를 모르고 방문한 분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에, 뭔가 하고 들어왔다가 본인의 취향에 맞지 않아 구매하지 않고 나가셔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분들이 대부분인 하루엔 정말 힘이 쭉쭉 빠진다. 예전에도 한 번 말했던 것 같은데, 가끔 손님이 엄청 몰려서 가게 안이 북적이다가도 그 모두가 아무도 구매하지 않고 썰물처럼 다 빠져나갔을 땐 솔직히 믿기지가 않아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 적도 많다. 분명 이런저런 제품을 한참이나 손에 들고, 또는 품에 안고 계셨던 분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한 명도 구매하지 않았다는 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앞서 말한 것처럼 처음 예로든 독립서점들에 비하면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상황이 좀 나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근래 들어하게 된 작은 결심이 하나 있다. 가게를 운영한 지 약 2년쯤 지난 시점에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손님 자체의 방문이 너무 적지만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구입을 하는 가게 (혹은 이런 입지)'와 '방문한 손님 대비 구매율은 훨씬 낮지만, 많은 손님들의 방문으로 많은 매출을 기대해볼 수 있는 가게 (혹은 입지)' 가운데 무엇이 더 좋을까 하는 고민. 아마 그때만 해도 후자가 훨씬 감사한 경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이 아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일부러 손님을 방문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다음 스텝에서 다른 곳에 가게를 열게 된다면 전자의 경우를 택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에 비해 상업성은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작은 가게의 특성상 이 공간을 운영하는 나나 혹은 다른 직원의 멘털이 전부라고 봤을 때 더 오래 덜 상처받으며 견딜 수 있는 건 분명히 전자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법을 놔두고 더 (맘) 편한 방법을 선택하는 안일한 (혹은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4년 정도 운영해보니 나의 분명한 한계를 알게 됐다. 더 오래 하려면 덜 스트레스(상처) 받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는 없다. 그게 더 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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