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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an 21. 2016

12. 글이 자주 산으로 간다

산 정상에 오르고 나서야 내가 왜 산을 오르게 되었는지 자문한다

바로 방금 전의 일이다. 그리고 아주 자주 있는 일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제목 수준의 주제만 떠올리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편인데, 그렇다 보니 가끔은 (아니 자주) 글을 쓰는 도중에 본래 생각했던 주제와 점점 멀어지게 된다거나 아주 심하게는 반대의 논리로 전개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즉, 글을 쓰다 보면 꽤 자주 글이 산으로 간다. 어떨 때는 너무 신나게 써 내려가는 나머지 산 정상에 오르고 나서야 내가 왜 이 산을 오르게 되었는지 자문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사실 그래서 썼다가 지워버린 글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나는 A라고 생각해'라는 주제를 떠올리고 글을 썼는데 쓰다 보니 '하지만 B가 맞더구나'라는 글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면, '이 글은 흔한 꼰대 같은 얘기랑은 조금 다른 글일 거예요'라고 시작했는데 다 쓰고 보니 내가 경계했던 바로 그 꼰대 같은 글과 결과적으로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해 지워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혹은 글을 쓴 당사자인 나는 내 심정을 잘 이해하는 편이니 오해할 확률이 낮지만, 글을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해하기 딱 좋은 결과물이 나와서 취소한 경우도 많았다. 


글이 자주 산으로 가도 계속 쓰는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산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깨닫게 되는 점들이 결코 작지 않았다. 작게는 부족한 논리를 완성해 가는 공부가 되기도 하고, 크게는 내 스스로를 속여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 귀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자부하기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것이 개인의 입장에서 쓰는 글이든, 아니면 회사나 어떤 다른 입장에 서서 쓰는 글이든 간에 소신 100% 만으로 써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 좀 더 개인적인 글들을 쓰게 되면서 발견하게 된 점은 의외로 글에서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더 완벽한 글, 더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다 보니 길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잃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 전에 쓰던 글도 제목 만으로는 완벽한 글이 될 것 같았는데,  중간쯤 쓰다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일단 바로 쓰기를 멈췄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한 가지는 그래도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끔 다른 산에 올라와 있는 걸 깨닫게 되면 그냥 다 지워버리거나 무슨 글이든 단 한 가지의 결론, '어떤 의견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의견을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어 무력감과 허무함에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방금도 그랬다. '이게 말이 돼?'라는 생각에 애초에 할 필요가 없는 말이 었네 라는 생각이 들어 허무해져 버렸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주절주절 쓰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다. 그리고 간혹 의도하지 않았던 아주 큰 우연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도 이미 여러 산을 올랐지만 다시 스스로 산을 내려와 또 한 번 오를 산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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