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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an 28. 2016

14. 이번엔 그냥 시작하리라

무엇이 될지 몰라도 시작부터 해야

회사를 관두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한 가지가 있었다. 영화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내가 평소 좋아하는 영화/문화 관련 내용들을 좀 더 긴 호흡으로 정성스레 다룬 콘텐츠들을  담아내는 서비스 혹은 플랫폼 혹은 매거진 정도인데, 막상 제대로 해보려고 (아주 조금) 조사를 해보니 역시 조사 전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일단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내가 하려는 것과 유사한 서비스들이 많았다. 어떤 곳은 콘텐츠의 질이나 구성은 크게 손색이 없으나 이를 담아내는 플랫폼이 세련되지 못해 아쉬운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플랫폼은 모바일은 물론 웹에서도 깔끔하고 세련되게 떨어지는 곳이었는데 내용이 별로 없었고, 또 다른 곳은 둘 다 제법 괜찮아서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내가 당장 시작해도 저것보다 잘할 수 있을까 싶은 곳도 있었다.


사실 이런 고민은 마케팅/서비스 회사를 다닐 때도 항상 드는 문제였다. 어떤 어플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 보면 이미 해외에서 더 기똥차게 서비스하고 있는 곳이 있거나,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했을 때 그 서비스보다 더 잘되기는 애초부터 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아주 새로운 것' '최초의 것' 혹은 '완벽한 것'이 아니면 아예 시작조차 못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이건 일종의 콤플렉스에 가까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 무뎌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실제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서비스를 보자면 최초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최초이거나 독특해서  성공했다기보다는 후발주자라도 더 잘하거나 비슷하다는 초기 논란을 잠 재울 정도로 또 더 잘해서 이른바 '성공'을 하게 된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대박'을 노리거나 목표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이유들을 따지다 보니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는데, 나는 이런 '일' 말고도 모든 면에서 이런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가 좀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남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같이 시작한 일이라면 그것이 일이던 운동이던 공부이던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그와 정반대로 이미 남들이 다 먼저 시작한 일을 뒤늦게 시작하는 경우는 이에 곱절은 큰 부담을 갖고 잘 시도조차 못하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가까운 예로 운전면허도 그랬다. 운전할 일이 없다 보니 최근까지도 면허를 일부러 따지 않았었는데,  지난해 드디어 면허 시험을 보았을 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으나 엄청나게 혼자서 부담을 겪었었다. '진짜 남들 다하는데 설마 내가 못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이 의외로 컸고, 이는 단순히 '남들 다하는데..'라서가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적인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가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더 잘해야 돼' '최소한 평균이 아니라 더 잘해야지' 같이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은근히 그렇게  살아온.


그런데 요새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면서 조금은 이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있다. 아니 그러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좀 필요하다. 성격상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하는데, 또한 그 성격상 그 정보로 인해 내가 부족하다거나 유리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를 때는 그 정보가 확실히 독이 되는  듯하다. 아예 모르면 어찌 되었든 저질러 볼 텐데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하루 종일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떠올려 보고, 이미 비슷한 아이디어로 잘 하고 있는 작은 팀들과 서비스들을 보면서 또 자극과 고통을 받는다 ㅎ


아, 운전면허는 어찌 되었냐면. 역시나(?) 나는 운전 천재였다. 학원에서 딱 4시간인가 타보고 도로 시험까지 한 번에 붙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시험 보기 전에 주변에 언제 시험 본다고 말했어도 되었던 것이다. 비밀로 하다가 합격하고 나서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필요 없이.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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