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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Oct 27. 2015

신해철, 고마운 그대에게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도록 지켜봐준 그대

시간은 확실히 상대적이다. 그리고 인간은 참 단순한 동물이다.

한 때 죽을 것 같이 아팠던 상처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견딜 만한 상처가 되어 있고, 절대 못 잊을 것 같았던 사람과 사건들도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고 보면 어느 덧 처음과는 다르게 잊혀 있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무슨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서두와 같은 망각을 경험했기에 죄스러움부터 들었다. 왜냐하면 1주기를 기념하는 여러 방송이나 소식을 듣고 처음 한 이야기가 '벌써 1년이나 지났네...'였기 때문이다.


내 10대에 있어서도 신해철과 N.EX.T라는 존재는 엄청난 영향을 끼친 존재였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제와 떠올려 보니 내 삶의 중요한 순간 순간에 나도 모르는 사이 큰 영향을 끼쳤더라. 그의 가사가. 이야기가. 어려서부터 일찍 철이 든 나는, 쉽게 말해 나 혼자 잘나서 일찍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었다. 수 많은 음악을 들었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그 당시에는 미처 체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더 이상 내 삶에 음악이 삶을 뒤흔들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 일이 드물어 지자, 어린 시절의 그 음악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 자주 있다.


이번 신해철의 1주기를 맞아 불후의 명곡과 히든싱어를 통해 특별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두 프로그램 모두 보는 내내 펑펑 눈물을 쏟았는데, 그 이유가 좀 달랐다. 그가 말도 안 되는 참으로 억울한 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는 그의 부제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슬픔, 그리고 슬퍼하는 그의 가족과 동료들의 모습을 통해 느껴지는 슬픔으로 인해 눈물을 흘렸었는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예전에도 수없이 들었던 노래들의 가사가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들렸다. 20대 초반의 신해철이 당시 10대와 20대 우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당시엔 그냥 멜로디가 좋고, 단순히 노래가 좋고, 여러 다른 이유로 좋아했던, 아니 가사가 와 닿았던 곡들의 감흥도 이번과는 달랐다.


여러 곡들의 가사가 가슴을 찔렀지만 그 가운데 가장 와 닿았던, 아니 너무 세게 찌르고 있어서 도저히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곡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와 '민물장어의 꿈'이었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경우 사실 개인적으로 특별히 더 좋아했던 곡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두 프로그램에서 이 곡의 비중이 컸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이 곡 후렴구에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라는 가사를 듣고는 눈물이 펑 터졌다. '대답할 수 있나'라고 묻는 데,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단순히 무언가에 최선을 다했나 하지 못했나에 관한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 강하지만 따듯하게 '대답할 수 있나'라고 묻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민물장어의 꿈'은 그가 가장 좋아했던 곡이자 장례식에서 흘러나왔으면 좋겠다는 곡이라는 말에, 그 간은 사실 가사를 제대로 느낄 세도 없이 눈물이 먼저 나왔었다. 그런데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듣게 된 이 곡은, 이제야 비로소 가사의 의미가 느껴졌고 그래서 더 많은 눈물이 났다. 노래의 시작과 함께 흐르는 가사 속에 너무도 느껴지는 것이 많았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 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그리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라는 가사가 얼마나 큰 파도로 와 닿았는지 미처 글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30대는 어쩌면 죽을 것만 같았던 10대 시절 못지 않게 혼란과 질문 투성이다.

그래도 나의 30대는 신해철 그가 있어서 힘이 난다.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말을 비로소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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