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호 <호텔 앤 레스토랑> 매거진 기고문
전 세계인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진, 누구나 웃게 해주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한 뉴욕의 아이스크림 뮤지엄(Museum of Ice Cream_ MOIC)은 2016년 팝업 스토어로 시작해 2019년 뉴욕 소호에 정식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필자가 직접 방문하고 경험한 MOIC은 단순한 리테일 매장을 넘어 감성 포토존이자 아이스크림 시식 및 홍보관, 작은 놀이공원, 공간 대여 및 이벤트 공간, 그리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체험형 전시 공간이었다. MOIC이 재미있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명확한 주제로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했다. 둘째, 그 정체성을 다양한 접점에서 고객에게 전달하는 토털 브랜딩을 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아이스크림, 달콤함을 모티프로 한 다양한 체험 공간, MOIC 브랜드 굿즈(의류 및 액세서리, 소품 등), 평일 저녁과 특별한 날 개최되는 특별한 이벤트,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설치되는 핑크 크리스마스트리 이벤트(Pinkmas)까지. MOIC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고객과의 모든 접점에서 드러난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둔 이번 호에서는 달콤함으로 가득한 아이스크림 뮤지엄의 정체성과 공간을 활용한 토털 브랜딩에 대한 브랜드 토크를 이어간다.
MOIC의 시작은 팝업 스토어였다. 임시적으로 생겼다가 없어지는 팝업 스토어는 인터넷 웹페이지에서 떴다 사라지는 ‘팝업창’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팝업 스토어는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할 때,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살피는 동시에 브랜드를 알리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된다. 2016년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에 2달간 오픈한 MOIC 팝업 스토어는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한 다양한 고객 경험을 유도하는 곳이었다. 이에 대한 뉴요커의 관심은 매진 행렬로 이어졌고, 이듬해에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와 마이애미까지 확장했다.
2018년에는 MOIC과 핏(Fit)이 맞는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미국의 종합 유통업체인 타깃(Target)과의 파트너십을 맺어 특별 제작한 리미티드 에디션 어린이용 어패럴 론칭 및 판매와 MOIC에서 출시한 아이스크림 제품 라인을 타깃에서 단독 판매했다. 코스메틱 브랜드인 세포라(Sephora)와는 MOIC의 시그니처 모티프 중 하나인 스프링클을 활용한 브러시 세트와 아이스크림 모양의 케이스에 담긴 아이섀도, 아이스바 모양을 닮은 립글로스 등을 선보였다. 팝업 스토어로 브랜드의 가능성을 실험한 MOIC의 공동창업 자인 메리엘리스 번(Maryellis Bunn)과 매니시 보라(Manish Vora)는 2019년에 경험 개발 회사인 ‘피겨 에잇(Figure 8)’을 창업했다. ‘피겨 에잇’의 비전은 특별한 경험으로 사람들이 소통하고 서로 연결하며 추억을 생성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벤처 투자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뉴욕 소호에 MOIC의 정식 오프라인 체험 공간을 오픈했다. 이 건물은 약 675평의 면적에 120년 된 곳으로 세심한 설계를 통해 몰입형 체험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01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MOIC을 관통하는 대주제는 달콤함을 대변하는 아이스크림이다. 이 대주제로부터 시작해 각 체험 공간마다 소주제에 맞게 꾸며져 있다. 브랜드의 주요 컬러가 딸기맛 아이스크림이 연상되는 팬톤 1905C 색상인 만큼 3개의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다양한 명도와 채도의 핑크 색상으로 이뤄져 있다(그림 2). 방문객들은 다양한 콘텐츠와 공간을 경험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아이스크림 및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예쁜 공간에서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한다. 공간을 체험하면서 맛봤던 다양한 맛의 샘플 아이스크림은 관람이 끝난 후 로비 또는 온라인에서 추가로 구입이 가능하다.
02 특별한 경험
MOIC은 최근 몇 년간 각광받고 있는 ‘셀카 박물관(Selfie Museum)’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셀카 박물관은 소셜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박물관으로 방문객이 포즈를 취하고 멋진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설계된 포토존들의 집합체다.
셀카 박물관 설치물의 특징은 화려한 배경 및 색상, 독특한 소품, 착시 현상 등을 포함한다. 셀카 박물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박물관과는 괴리가 있는 형태로, 일부 전문가들은 ‘박물관’을 붙이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MOIC의 공동창업자인 매리엘리스는 경험과 박물관의 합성어인 익스페리엄(Experium)이라는 용어로 비즈니스를 설명한다. 경험을 의미하는 Experience와 박물관을 의미하는 Museum의 합성어다. 익스페리엄은 교육적인 목적은 부족하지만, 창의력을 바탕으로 설계된 공간 체험을 통해 특별한 경험과 영감을 제공한다. 이런 면에서는 박물관에서 역사와 유물 및 예술품을 감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새로운 경험과 영감을 얻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03 사람들 간의 연결
팬데믹으로 마스크 착용 및 거리 두기로 인해 현장에서 사람들과의 연결은 쉽지 않았으나, MOIC의 기본 취지는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람들 간의 연결이다. 전시관에 입장과 동시에 방문객은 ‘나만의 아이스크림 이름’을 적은 스티커형 명찰을 옷에 붙이고 다닌다. 사람들은 서로의 아이스크림 이름을 묻기도 하고 명찰의 이름을 보고 재미있다고 칭찬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대형 피아노 건반이 벽면에 설치된 ‘음악의 방’에서는 여러 사람이 건반 앞에 설치된 줄을 잡아당기며 건반을 연주할 수 있다(그림 2의 8번 사진). 처음 본 사람들과 이 건반을 연주하며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루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연결이다.
MOIC에서의 경험이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되면 온라인에서 사람들 간의 연결이 발생한다. 방문 예정인 사람들은 이미 방문한 사람들의 피드를 참고해서 같은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새로운 포즈를 생성하기도 한다. 이미 방문한 사람들은 내가 방문했던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를 구경하고 공감을 누른다. 이런 사람들 간의 연결은 방문객들이 브랜드를 자발적으로 홍보하는 역할을 하게 만들고, 브랜드 내러티브를 생성하는데 일조하도록 유도한다. #museumoficecream이 인스타그램에서만 21만 4000개의 피드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MOIC은 다용도로 활용 가능한 종합 체험전시관이었다. 자체 브랜드 아이스크림 시식코너이자 브랜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쇼룸(체험 전시관)이다. 또한, 즐거운 추억을 남기는 포토존이자 소규모 놀이동산이다.
건물의 1층 입구에는 MOIC에서 직접 제조한 아이스크림과 액세서리 및 소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이 있다. 소매점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핑크색의 미끄럼틀을 사이에 두고 체험관 입구와 출구가 보인다. 체험관 내부는 카페 및 바와 다양한 체험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친구들 및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 특별한 날 혹은 아이들의 생일파티에 방문하는 곳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특히 사진이 예쁘게 나오도록 세심하게 디자인된 곳이라 올 핑크로 단장하거나, 아이스크림과 어울리는 복장으로 방문해 인생 샷을 남기는 사람들도 많다.
전시관은 낮 동안에는 전 연령이 이용 가능하고, 7시 이후에는 16세 이상만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 밤 시간에는 연인과의 데이트 혹은 사교 모임의 장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때문이다. 전시공간을 돌며 아이스크림이 무제한으로 맛볼 수 있고, MOIC의 시그니처 칵테일이 제공된다. 스프링클 풀(그림 2의 14번 사진)에서 심리치료사 에스더 퍼렐(Ester Perel)이 진행하는 스토리텔링 게임인 ‘Games of Stories’을 통해 인간의 관계와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매해 11월 중순부터 12월까지는 MOIC만의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개최한다. 전시관 곳곳은 눈꽃 및 크리스마스 장식과 핑크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된다. 방문객은 핑크 아이템을 한 개 이상 착용하고 방문해야 한다. 또한 나눔과 사랑의 시즌이니만큼 ‘Toys for Tots’(부모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여유가 없는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배포하는 프로그램)에 기부할 장난감을 지참해서 방문하면 무료 아이스크림이 제공된다. 2018년 이래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이 이벤트는 MOIC의 브랜드 정체성을 견고하게 해주는 활동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MOIC은 19개의 체험 공간이 있고, 그중 대표적인 공간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그림 2).
01 나만의 아이스크림 이름을 지어봐
아이스크림 뮤지엄에 입장하자마자 하는 것은 나만의 아이스크림 이름을 지어보는 것. 입구의 이름표 스티커 기계에서 스티커를 뽑아서 우측의 바 형태 테이블로 이동해 나만의 이름을 적는다. 벽면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창의력과 위트가 넘치는 이름 예시들이 걸려있다. 앤더슨 스쿠퍼(Anderson Scooper), 데리아나 그란데(Dairyana Grande), 데미 젤라토(Demi Gelato), 소르베욘세(Sorbet-yonce) 등.
02 라운지
첫 체험 공간은 핫핑크 벽지와 커튼이 있는 라운지다. 이곳의 핑크 바에서 핑크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무료로 제공된다. 원래는 자유의 여신상을 닮은 아이스크림 콘 왕관을 착용한 아이스크림 여신이 노래를 부르며 공간을 활보한다는데,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이 퍼포먼스가 없었다. 코로나19로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듯하다.
03 연회의 방
이 공간은 꽉 채운 긴 테이블 위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다양한 디저트 모형이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다. 모형만 있으면 서운하니 실제로 맛볼 수 있는 두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 슈가 준비돼있다.
04 천상의 지하철
뉴욕의 지하철은 지저분하기로 악명 높다. 아이스크림 행성에 지하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이곳은 온통 핑크빛으로 가득한 지하철로 인스타그램용 포토존으로 유명한 곳이다.
05 하늘의 방
유니콘 구름이 떠다니는 맑은 하늘의 모습, 핑크빛 뭉게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의 모습, 보라와 핑크빛 그라데이션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으로 가득한 하늘의 모습 등 다양한 하늘의 색을 보여주는 방이다. 방문하는 타이밍에 따라 하늘색이 달라지므로 어떤 컬러의 하늘이 나타날지 모른다.
06 바나나룸
노란색부터 핑크색까지 공중에 매달린 바나나 그라데이션의 향연. 멋진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포토 스폿을 표시한 디자이너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07 거대한 스쿱룸
거대한 아이스크림 스쿱이 설치된 이 방은 벽면이 딸기맛 아이스크림으로 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방 역시 MOIC의 유명 포토존 중 하나. 한쪽 공간의 각 나라의 아이스크림을 소개하는 벽화에는 한국의 팥빙수가 명시돼 있다. 이 공간에서는 쫀득한 식감을 가진 부자(Booza) 아이스크림 샘플을 맛볼 수 있다.
08 음악의 방
전시관 중 유일하게 창문이 있는 공간이다. 양쪽 벽면은 피아노 건반 모양의 아트 월로 구성돼 있고, 건반 앞쪽에 매달린 링 손잡이를 당기면 건반에 불이 켜지며 소리가 난다. 줄을 당기며 톤을 맞추는 놀이에 빠져보자. 이곳은 최대 40명 규모의 모임 공간으로 대여도 가능하다. 전면의 창문에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고 춤을 춰보라는 문구들이 부착돼 있다.
09 무지개 터널
파스텔 톤의 무지개 터널 역시 MOIC의 가장 유명한 포토존 중 하나다.
10 미끄럼틀
MOIC 공간의 중심에 위치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미끄럼틀은 2층과 지하 1층을 연결하는 이동 통로다. 방문객들은 이 미끄럼틀을 타고 순식간에 지하 1층으로 이동한다. 미끄럼틀 옆에는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장식된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이것을 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1 멜팅 아이스크림 룸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 어둑어둑한 붉은색 공간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책상과 의자가 준비돼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원형 불빛이 있는 곳에는 초콜릿과 바닐라가 혼합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마련돼 있다.
12 여왕벌 방
여왕벌 방 천장에는 꿀벌 모형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 이곳은 유일하게 핑크색이 없는 노란색 방이다. 여왕벌의 날개를 형상화한 등받이의 의자 포토존과 노랑 짐볼은 인기 아이템이다. 벌집에 어울리는 허니 아이스크림이 제공된다.
13 놀이터
그네, 농구대, 미니 골프 퍼팅 존, 펄 아이스크림 포토존 등 다양한 놀이 기구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이곳은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14 스프링클 풀
MOIC의 시그니처 공간으로 손꼽히는 스프링클 풀. 고무 재질의 스프링클 모형이 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방문객들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한다. 딱딱한 고무 재질이라 볼 풀처럼 파묻혀 놀 수는 없지만, 발바닥 지압 효과가 있다. 놀 수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포토존에 가까운 곳이다.
MOIC의 토털 브랜딩은 명확한 아이덴티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정체성을 바탕으로 설계한 공간과 지속적인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양한 활동은 브랜드 성장의 발판이 됐다. 방문객들은 세심하게 디자인한 공간에서 찍은 사진으로 자발적인 홍보 대사로 활동한다. 이런 활동이 모여서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이미지 형성과 명성을 쌓게 한다. 필자 역시, MOIC에서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했고, 이를 본 지인은 이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하기도 했다.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이 공간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MOIC. 팬데믹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2021년 텍사스 오스틴과 싱가포르에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고, 2022년에는 시카고에도 오픈 예정이다. 서울에도 아이스크림 뮤지엄이 진출해 핑크 마스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