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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 박사 Mar 19. 2020

보스턴 일상 | COVID-19가 바꾼 일상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건 인간의 심리 

올 2월 초 한국에서 코로나로 시끌벅적할 때 미국에서는 아무리 뉴스를 뒤져봐도 코로나 관련 뉴스는 찾을 수도 없었는데, 2주 전부터는 CNN앱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코로나 관련 뉴스 알림이 오고, 하버드에서도 코로나 관련 이메일이 발송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주의사항에 관한 메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송되고 있어요. 한국에서 코로나가 급격히 번졌을 때 미국도 알게 모르게 독감 증상자와 뒤섞여 있어 코로나가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람들이 검사를 안 받으니), 이미 지역사회 감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막상 수면 위로 떠오르니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예측이 어렵습니다.


COVID-19가 바꾼 우리의 일상은 어떨까요?


1. 특정 물건 품귀현상

이미 한 달 전부터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던 특정 물건 품귀현상. 특히 마스크, 손세정제, 알코올류의 물건들을 시작으로 이제는 휴지와 키친타월, 비누까지 영역이 확대됐습니다. 1월 말~2월 초에 아마존으로 신청해놓았던 마스크는 4월 21일에 도착 예정이라더니 2월 말에 갑자기 다른 물건으로 바뀌어 결국 취소했구요. 이 곳은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는 분위기라 일단은 취소했는데, 나중에 정 필요하면 만들어 쓰려고 대체할 수 있는 재료들은 구입해 놓은 상태예요. 손세정제와 알코올도 2월 중순에 부랴부랴 혹시나 몰라 주문해서 1~2일 만에 수령했는데, 며칠 후에 혹시나 하고 재 검색해보니 모두 품절이더군요. 휴지, 키친타월, 물티슈, 비누는 짝꿍 친구 H네가 한국으로 가면서 몽땅 우리에게 넘겨서 다행히도 창고에 잔뜩 쟁여두고 있어서 신경도 안 썼는데, 마트마다 해당 물건들을 아예 구할 수 없는 상태가 됐어요. 마트 입구에는 클리닝류 제품 부족으로 인한 양해 메시지가 붙어있고, 해당 제품들이 입고되더라도 1인당 구입할 수 있는 수량을 6월 1일까지 제한한다고 공지하고 있습니다. 아마존도 검색해보니 모두 품절 상태..


2. 대규모 모임 연기/취소

2~3주 전부터 100명 이상의 미팅이나 모임을 자제해달라는 지침이 학교로부터 내려왔고, 이에 세미나, 미팅들이 줄줄이 취소되었어요. 국제학회들도 모두 연기하거나 취소되는 상황. 대규모 모임과 세미나가 연기되고 취소되는 마당에도 어쩔 수 없이 진행해야 하는 행사들은 그대로 강행을 하는 경우도 있네요. 안타깝게도 2월 26-27일에 보스턴 시내의 한 호텔에서 진행한 바이오 테크 미팅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뉴스에 따르면 매사추세츠 주의 95명의 확진자 중 77명이 바이오젠 (행사 주최자) 임원들과의 미팅으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매사추세츠주에 거주하지 않는 12명의 확진자들도 이 행사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도하고 있구요. (Cluster of Coronavirus Cases Tied to U.S. Biotech Meeting) 짝꿍네와 콜라보하는 랩 일원도 이 행사에 다녀와서 증상을 보였다고 해서 관련된 랩들 모두 긴장했어요.


3. 온라인 강의/ 미팅/ 예배

봄학기가 시작되는 3월, 하버드는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변경했습니다. 대학생은 물론 대학원생들까지.. 다 걱정스럽긴 하지만 제일 먼저 걱정된 것은 올해 MBA 과정에 입학한 학생들이에요. 토론 수업이 중요한 이 과정에서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면 제한이 많을 텐데... 학비 아까워서 어째... 하는 생각이 절로.. 학비는 아깝지만 건강이 우선이니.. 그래도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온라인 강의도 진행할 수 있고 이 또한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고 애써 위로해봅니다.

한국 교회들은 대다수 교회에서 온라인 예배로 변경했다고 하는데 미국의 한인교회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독려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을 강조하셨어요. 저는 개인적인 이유로 1월 말부터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었지만, 보스턴에도 확진자가 증가하다 보니 예배당의 사람들이 확연히 줄은 모습이에요. 성가대원들도 눈에 띄게 줄었고, 보통 온라인 예배 접속자 수가 20명 안팎이었던 것이 금주에는 100명 안팎으로 대폭 증가했네요.


4. 빠르게 소진되는 마트 물건

지난주 금요일 하버드에서도 확진자가 나와서인지 마트의 물건들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저는 집 앞 마트로, 짝꿍은 T 타고 3 정거장 거리에 있는 마트로 향했습니다. 몇 주 전부터 미리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비해놨음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혹시나 더 필요한 게 있을까 하는 맘에 갔더니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쇼핑백을 들고 줄지어 내려오고 있더군요. 이 곳은 동네 마트라 그런지 사재기하는 풍경은 아니었으나, 한 번에 많은 인파가 몰려서인지 마트의 야채, 고기, 해산물, 빵, 계란, 주스, 파스타 품목들은 전멸한 상태. 마침 지난주 화요일에 지인이 코스트코에 간다고 하면서 필요한 물건 알려달라고 해서 고기류는 넉넉히 준비해놓아 정말 다행이에요. 알아서 미리 챙겨주는 고마운 지인덕에 한 숨 돌렸습니다. 금요일 저녁 풍경은 정말 충격 그 자체. 마침 목요일에 빵이랑 계란류 사놓길 잘했지.. 역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집 앞 마트의 빵 코너에 빵이 실종된 모습 (다른 코너들은 사람들이 많아 촬영 못했어요)

늘 넉넉하게 채워져 있던 빵 코너 / 포장 식빵 코너도 전멸
늘 신선한 빵들로 가득했던 베이글 도넛 코너 (그 와중에 달달한 포장 빵들은 잔뜩 쌓여있네)

T 타고 3 정거장 가면 있는 짝꿍이 간 마트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네요.

껍질만 수북한 양파 코너 ㅜㅜ
싹쓸이.. 이것은 무슨 코너일까? 샤워볼이 있는 거 보면 비누? 휴지?

양파를 사놓지 못한 아쉬움에 토요일에 다시 한번 집 앞 마트를 방문해보니 수제 빵 코너를 제외한 대부분의 물건들이 채워져 있었고, 심지어 휴지도 몇 롤 쌓여 있었어요. 다행히 이 동네는 이기적일 정도의 사재기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오다 보니 서양인들의 주식인 빵과 파스타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어요.

파스타 코너 / 맞은편 소스도 전멸되어가는 상태


5. 재택근무의 시작

하버드의 재택근무가 가능한 IT랩들은 지난주부터 벌써 재택근무를 권장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짝꿍네 랩은 쥐를 갖고 실험을 해야 하는 곳이라 재택이 어려운데, 확진자도 나오고 미국 내 감염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보니 이번 주 목요일부터 쥐를 관리해야 하거나 정말 부득이하게 실험을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인원만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어요. 짝꿍도 이번 주부터 시험을 시작해서 데이터를 얻기 시작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실험이 전부 중단되니 참 안타깝게 됐지만, 프로그래머 출신이라 그나마 다른 사람이 이전에 수집해 놓은 데이터 분석할 것이 쌓여 있어 이 시기에 그 작업이나 해볼까 하고 있답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보니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직군이 참 좋은 것이란 걸 깨닫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현장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컴퓨터만 있으면 모든 일처리가 가능한 직군은 별 걱정 없이 일하면서 보낼 수 있으니 말이죠.


짝꿍의 재택근무 예상 기간은 6~12주... 저의 자유시간이 줄어드는 아쉬움은 있지만, 참 미국 와서 징하게 붙어있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도 살짝^^ 비싼 집세의 집을 그동안은 거의 혼자 사용했다면 이제 둘이 하루 종일 함께 만끽한다 생각하면 또 기분이 좋아지는 참 단순한 사람이에요 저란 사람. 어젯밤 거실에 짝꿍의 작업공간도 마련하고 나니 이제 진짜 실감이 나더군요.


6. 영업장 영업시간 변경 및 수용인원 제한

보스턴 시장은 바, 레스토랑, 카페 등의 영업시간을 11시까지로 지정하고 평소보다 50% 절감된 수용인원을 받으라는 새로운 지침을 내놓았습니다 (Nightly Curfew and Reduced Capacities Mandated for Boston Restaurants and Bars to Slow Coronavirus Spread). 아무래도 미국은 한국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분위기도 아니고 곳곳에 발열 체크기를 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보니 이런 규제를 내놓고 지키지 않을 시 30일 영업정지를 한다는 강력한 제재를 하는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시장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 보스턴 지역의 많은 레스토랑은 이미 자발적인 임시 휴업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보스턴의 공공도서관도 임시 휴업을 하면서 대여해 간 책에 대해서는 연체료를 받지 않겠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네요.


7. 줄줄이 취소되는 항공편

항공편 취소는 이미 한국이 난리 났던 2월 중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보스턴-서울 대한항공 직항 편은 2월 중순에 이미 주 2회로 감편 운항한다고 공지됐고, 3월 초에는 아예 결항하여 뉴욕을 경유해서만 갈 수 있게 됐어요. 어쩔 수 없이 한국에 가야 하는 사람들은 취소도 못하고 번거롭게 뉴욕까지 경유해서 가야 한다니.. 이만저만 불편하게 아닐 듯싶습니다. 게다가 이 민감한 시기에 여러 장소를 거쳐야 하니 불안감도 극심할 것 같고. 또 취소를 한다 해도 수수료를 일부 제하고 환불하는 규정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주. 저도 3월 말에 한국에 방문 계획이 있어 마일리지로 예약을 했다가 2월 말에 취소했는데, 결국 수수료 3000마일은 제하고 환불받았어요. 항공사에 이 케이스는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으로 취소하는 거니 수수료를 제하는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으나 해당 내용에 대한 답변은 받지 못했구요. 물론 항공사의 입장도 있긴 하겠지만, 참 서로가 모두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8. 비자 프로세스 올 스톱

3월 19일부터는 주한 미 대사관에서 이민, 비이민 비자 발급을 위한 정규 인터뷰 일정을 중지한다고 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런 조치가 필요할 수 있지만, 비자 인터뷰 예정자들의 속 타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날짜를 선택할 때 고민하며 했을 텐데 정말 하루 이틀 차이로 인터뷰가 몇 달 미뤄진다고 생각하니 참 아찔하네요. 물론 인터뷰를 미리 보고 비자를 정상적으로 받아 미국에 예정대로 오는 사람들도 다행이긴 하지만, 또 현재 미국 현지 상황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한국에 조금 더 머물다가 상황이 나아지면 오는 것도 괜찮은 듯해요. 어차피 미국에 일찍 들어와도 바로 일상생활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


9. 사회로부터 고립

코로나로 인해 모든 모임/미팅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됨을 느낍니다. 저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순간부터 혼자 놀기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사회로부터 고립을 하고 있었지만, 이게 막상 자발적인 게 아니게 되니 고립된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더군요. 물론 SNS와 카카오톡이 있어 지인들과 소통하는데 문제는 없으나,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산책도 하고 얼굴 보며 대화도 하고 맛있는 것도 함께 나누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오프라인 만남들이 벌써 그립습니다. 그나마 가족이 함께 있으니 다행이지 정말 혼자 유학 온 사람들의 외로움은 어떨지...


10. 방구석 놀이터의 탄생

원래도 집순이 기질이 있어 집에서 이래저래 사부작 거리길 좋아하는데, 요즘 저의 취미들이 빛을 보고 있어요.

타임랩스 촬영하며 공부하기. 마침 페이퍼 리뷰도 왔겠다 페이퍼 수정 작업한다고 책상 앞에 하루 종일 붙어 있는데 재미를 더하여 타임 슬랩 찍기 삼매경에 빠졌어요. 예전에 인스타그램의 스터디 그램 (타임 슬랩 촬영 영상 찍어 올리는 포스트) 들을 보면 저게 공부가 되나? 싶었는데, 직접 해보니 의외로 집중이 잘 되는 거 있죠? 일단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 있으니 공부하는 동안 폰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구요. 촬영 버튼을 누르는 순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딴짓을 안 하고 진짜 100% 집중을 해서 공부하게 된달까요? 여러모로 생각지 못한 장점들이 있다 보니 타임랩스 중독에^^

방구석 운동. 운동 열심히 하려고 GYM이 있는 아파트를 선택했건만, 요즘은 유튜브 보며 방구석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필라테스 영상, 폼롤러 마사지 영상 등 좋은 자료들이 많아 집에서도 손쉽게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나름 편하고 좋네요. 왠지 코로나 사태 종식돼도 집에서 계속 방구석 운동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색칠놀이.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은 소질도 없어 그런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색칠놀이는 유독 좋아했답니다. 나이가 들어도 가끔 머리가 복잡하거나 심심할 때 컬러링북을 꺼내 혼자 놀기 좋아해요.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들고 온 컬러링북과 색연필들이 요즘 제대로 나에게 힐링타임을 선사해주고 있어요.  

프로젝터로 영화보기. 미국에서는 TV를 사지 않고 거실에 프로젝트를 설치했어요. 비싼 건 아니고 그냥 가성비 좋은 한국서 쓰던 거..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나름 운치 있게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네요. 넥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동영상 닷컴 등의 사이트에서 한국의 콘텐츠를 보기도 하고... 주말 저녁에 와인 한 잔 하면서 소파에 누워 보기에 딱!



2월 말부터 보스턴도 이상기후인지 12-17도를 오가는 따뜻한 봄 날씨였는데, 어제는 갑자기 기온이 2도까지 뚝 떨어졌어요. 그리고 하늘에서는 눈이 +_+ 영상 2도인데 눈? 그래도 왠지 이게 보스턴다운 날씨지 싶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생활이 달라지고 마음이 각박해져 있을 시기에 내리는 눈이 왠지 포근하게 느껴지네요.

3월 중순의 영상의 날씨에 눈이 오는 보스턴! 슬로모션에는 배경 소리가 녹음이 되어 배경 음악을 입혔다.


어려운 시기에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것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서로 간의 불신, 원망으로 인한 인종차별, 그리고 일단 나는 살고 봐야지 하는 이기심으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입니다. 실제 미국에서 코로나로 인해 총기류, 탄약 등의 판매가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Gun sales rise as coronavirus fears trigger personal safety concerns , For Some Buyers With Virus Fears, the Priority Isn’t Toilet Paper. It’s Guns) 생필품과 식료품을 구할 수 없을 시 누군가가 우리 집을 약탈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 >_<


이 어려운 시기에 이기심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를 배려하며 잘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영국의 복싱 코치 프랭크 부르노가 어제 자신의 트위터에 사람이 사람을 더 위태롭게 한다며 사재기를 멈춰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게시한 사진이 마음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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