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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라쓰로 본 브랜딩

Brand strategy & co-creation

by 브랜딩 박사

뒤늦게 넷플릭스로 정주행 한 이태원 클라쓰. 이 드라마를 보게 된 이유는 소신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주인공이 본인의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대한 스토리라는 것에 끌려서였다. 영향력 있는 프랜차이즈 기업 '장가'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학교 폭력을 서슴없이 행하는 '장근원'과 그를 막지 못하는 학우와 선생님.. 이에 맞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주인공 '박새로이'. 우리의 주인공은 전학 온 첫날, 선생님도 막지 못하는, 같은 반 친구에게 학폭을 가하는 장근원을 말리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때리게 된다. 이때부터 '장가'와 박새로이의 악연의 시작.. 결국 교장실에 불려 가고 '장가'의 회장인 장근원의 아버지와 '장가'에서 일하는 부장인 박새로이의 아버지. 교장실에서의 박새로이의 폭력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사과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에 굴하지 않은 박새로이는 결국 퇴학을 하게 된다. 이 악연은 드라마가 전개되는 내내 이어지고, 결국은 중졸에 전과자인 정의로운 주인공의 창업신화와 악당에 대한 복수로 권선징악의 결말을 맺는 스토리 자체는 조금은 클리셰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곳곳의 교훈과 감동, 웃음을 주는 포인트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이 드라마에서 내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장가'의 장 회장과 '단밤'의 박새로이의 상반된 경영철학, '단밤'의 브랜드 코-크리에이션과 리브랜딩 과정이었다.


1. 경영철학: 장사는 이익이 우선 VS. 사람이 우선

경영학에서 첫 시간에 배우는 내용은 기업의 존재 목적이고 그 답은 이윤 극대화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장사를 함으로써 이윤을 발생시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를 이루는 과정에서의 두 브랜드의 상반된 경영철학이 재미있다. 장사를 못하면 사람도 없다 VS.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장사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질문만큼 옳고 그름을 따지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리고 기업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CEO의 역할과 리더십에 차이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처럼 CEO가 직원 하나하나를 챙기며 모든 문제를 직원들과 함께 상의하며 일을 진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까? 그렇지만,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데 있어 CEO가 갖고 있는 경영철학은 그 브랜드의 방향과 미래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가'가 처음 작은 포차로 시작할 때의 경영철학은 '가족이 굶지 않도록'한다는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진심 어린 철학과 노력으로 인해 투자도 받고 한 걸음씩 성장을 하면서 초심을 잃고 철저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부정한 일을 스스럼없이 벌인다. 그에 대한 죄책감도 물론 없다. 동업자의 사망 이후, 장 회장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직원들 위에서 군림하는 최고경영자로, 직원의 공을 가로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직원들을 개, 돼지로 비유하며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조직문화를 키워나간다.


그에 반해 '단밤'은 '장사는 사람이다'라는 소신을 갖고 눈 앞의 단기적 이익보다는 자기 팀, 사람을 우선시하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장사가 안되어 파리 날리는 가게에 오랜만에 받은 고객이 자신의 동료에게 "야! 알바"라고 말하자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사과를 요청하며 직원들의 마음을 울린다. 박새로이는 직원들의 강점과 가능성을 칭찬하며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단밤의 직원들은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리더를 위해 내 한 몸 불살라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반된 두 오너의 경영철학

'단밤'의 직원들의 이런 모습은 직원을 회사의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하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나타내 준다. 이는 서비스 마케팅 연구와 산업에서 예전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다. 럭셔리 호텔 브랜드들에서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다. 매리엇 호텔 (Marriott)의 핵심 가치는 "We put people first, we pursue excellence, we embrace change, we act with integrity, and we serve our world"로 사람이 최우선에 놓여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고객뿐 아니라 직원도 포함하고 있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한 리츠칼튼 (Ritz-Carlton)의 모토 (motto)는 "We are Ladies and Gentlemen serving Ladies and Gentlemen"으로 직원을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직원의 가치도 함께 높여준다. 이 모토의 핵심은 "우리가 직원을 우대해주면 그들이 알아서 고객을 위해 힘쓴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호텔리어의 로망, 포시즌스 호텔 (Four Seasons) 역시 직원을 호텔의 최고의 자산이자 성공 요소로 보고 있다 (Our greates asset, and the key to our success, is our people). 이러한 움직임은 고객과 매출을 최우선에 두던 경영학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주요 경영학 논문에서 직원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그들을 브랜드 시민, 브랜드 대사 (외교관)로 인식하며 직원들에게 브랜드 관련 정보 공유, 교육, 커뮤니케이션을 함으로써 브랜드 정신을 내재화시키는 내부 브랜딩을 강조하고 있다.


2. 브랜드 코-크리에이션

지난 10여 년간 학계나 산업에서는 고객을 주요 'brand co-creator'로 인식해 왔다. 고객과의 단단한 결속으로 그들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며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구전 활동 (word-of-mouth)은 물론이고, 대변하기도 하며, 홍보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brand co-creator'로서 직원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이는 내부 브랜딩에서 한 발 짝 더 진화한 것으로 직원을 '브랜드 수용자-전달자'개념에서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함께 만들어나가는'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 연구주제가 직원과의 브랜드 코-크리에이션의 중요성을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에, '단밤'의 박새로이가 그의 직원들과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성공하는 모습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박새로이는 조금은 미련해 보일 정도로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주고 (CEO의 경영철학), 그 안에서 거의 모든 안건을 직원 ('단밤'의 창업 멤버)들과 최대한으로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멤버를 각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해주고 권한을 주는 모습도 직원들 모두가 브랜드 오너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 본다. 이는 초반의 작은 포차에서 시작했을 때부터, 후에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공할 때까지 지속된다.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의 브랜드 코-크리에이션 정신은 '단밤' 밖에서도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경리단길의 뒷골목의 죽은 상권에 건물을 매입하고 가게를 옮기게 되었을 때, 주변 상인들의 브랜드도 돋보여질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 나타난다. 메뉴 디자인, 테이블 배치, 마케팅 홍보 등 주변 가게들의 문제점들을 자기 문제처럼 고민하고 함께 변화하며 죽었던 상권이 활성화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는 상권과 거리를 활성화시키는 시도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브랜드 코-크리에이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하나의 가게 브랜드에서 벗어나 상권, 거리 자체의 브랜드를 여러 상인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취지에서 말이다.


3. 리브랜딩 (Rebranding, 브랜딩을 새롭게 하는 것)

어느 브랜드든 명확한 콘셉트를 갖고 고객의 머릿속에 포지셔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못하면 쉽게 잊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단밤'은 백색의 공장 같은 불빛, 무미건조하면서도 빛이 바랜 것 같기도 하고 이끼가 낀 것 같은 느낌의 초록빛 인테리어가 식욕을 저하시킨다. 또한, 조교복을 연상하는 유니폼 (게다가 칙칙한 남자 세명)으로 전반적인 가게 분위기가 이태원의 힙하고 다채로운 분위기와는 다소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는 외식업에 대한 이해도, 전문성도, 명확한 시장조사도 없이 그저 이태원이 좋아서 단순히 이 곳에 포차를 오픈하고 싶어 했던 박새로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으리라.


이태원 클라쓰에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박새로이가 조이서 (못하는 것이 없는 천재소녀이자 인플루언서)를 매니저로 영입하면서 리브랜딩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린다는 것이다. 극 중 조이서가 브랜드 네이밍을 제외하고, 인테리어, 조명, 가구 배치, 음식 (메뉴), 데코레이션, 각종 커뮤니케이션 (광고, 홍보, 서비스 등)까지 일관성 있게 전면 수정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했던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브랜딩 학계나 현업에서 리브랜딩을 할 때, 과거에는 로고 (logo), 심벌 (symbol), 색상 등의 그래픽 요소의 디자인 변경이 주된 고려 대상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고객 체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며 사람들이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적 요소 (인테리어, 유니폼, 장식품, 음악, 향기 등)와 커뮤니케이션까지 일관성 있게 관리하는 것에 대한 사례들이 늘고 있다.


드라마 속 ‘단밤’의 리브랜딩 과정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 브랜드 네임 & 로고

'단밤'이라는 이름을 내심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지만, 박새로이에게 브랜드 네임의 의미를 들은 후, 변경하는 대신 그 브랜드 에센스 (essence)를 일관성 있게 풀어내려는 노력을 보인다.


쓰린 밤이 내 삶이 달달했으면 했어


밤톨이라는 별명 때문에 '단밤'으로 브랜드 네이밍을 한 줄 알았더니.. 한 순간에 아버지를 잃은 박새로이가 '달달한 밤'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정한 이름 (중의적인..). 그 의미를 담아 이태원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쉽도록 브랜드 마크인 소주병과 잔 옆에 Honey Night (달달한 밤)을 병기했다. 그와 더불어 부수적인 간판으로 달에서 달달한 꿀이 떨어지는 듯한 모습의 픽토리얼 마크도 새로 디자인하여 활용했다. 이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실제 브랜딩을 할 때, 브랜드 마크는 한 가지로 통일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은 경우, 고객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고 브랜드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JTBC '이태원 클라쓰' 중 '단밤'의 간판 / 인식률을 높이고 포지셔닝을 하기 위해 사용한 픽토리얼 마크


| 고객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각적 요소

포차의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음식을 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인테리어와 조명임을 강조한다. 비효율적인 좌석 배치를 효율적으로 변경하고, 힙한 색상의 네온사인을 이용해 분위기를 한층 젊고 달달하게 만들었다. 조명 역시 창백해 보이는 무미건조한 백색 등에서 샹들리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색상의 병을 이용해 다채롭고 힙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그라피티 느낌의 미디어 아트로 상황에 맞는 분위기 연출도 가능하게 하고, 높은 층고를 활용해 천장에 색색의 풍선을 이용한 장식으로 위트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엄청난 메뉴의 종류와 글씨만 빼곡하던 메뉴에서 먹음직스러운 사진을 담아 고객의 의사결정을 쉽게 도와주었다 (포차이기 때문에 사진이 있는 메뉴가 효과적일 수 있다.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또 다른 이야기). 대표 메뉴를 정하면서 음식 맛을 높이는데도 노력하였으며, 음식의 프레젠테이션에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다. 기존의 빨간 유니폼에서 직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자유복으로 변경하고 '단밤'의 브랜드 마크 (초록색 소주병과 소주잔)을 활용한 귀여운 명찰로 통일성을 주었다.

JTBC '이태원 클라쓰' 중 리브랜딩으로 인한 변화

유니폼의 경우, 실제 상황이라면, '단밤'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으면서도 직원임을 드러낼 수 있는 통일화된 복장이 필요해 보인다. 이는 모든 직원이 획일적인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고객 입장에서 직원을 손쉽게 구분하는 것이 유니폼의 하나의 기능이기도 하기 때문에 뒷모습만 보더라도 직원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직원의 개성을 말살하는 획일적인 유니폼을 원하지 않을 경우, 획일화 속 자율성을 꾀하는 방법도 있다. 블루보틀의 유니폼을 예로 들면, 청색 셔츠에 앞치마가 유니폼이다. 다만, 청색 셔츠의 컬러와 디자인은 모두 다른데, 그 이유는 직원들이 소유하고 있는 셔츠를 유니폼으로 입기 때문이라고 한다. 셔츠에는 자율성을 주지만 앞치마와 블루보틀 뱃지로 통일성을 주고 있다. 또한, 하얏트 (Hyatt) 계열의 라이프스타일 호텔로 차별화하는 안다즈 (Andaz, 힌디어로 '개인적인 스타일' 의미) 호텔은 한 발 더 나아가 직원들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유니폼 제도를 도입했다. 인도 뉴델리의 안다즈는 패션 디자이너 Lecoanet Hermant 가 디자인한 여섯 종류의 유니폼 중, 각 직원마다 본인의 취향, 스타일에 따라 3 세트를 선정하여 입을 수 있도록 했고 (When uniforms get personalised), 작년에 서울 압구정에 오픈한 안다즈 역시 '앤디앤뎁' (Andy&Debb, 패션 디자이너 부부 김석원과 윤원정)의 미니멀리즘 서브 브랜드 '콜라보토리' (COLLABOTARY)와 협업하여 디자인한 유니폼으로 직원들이 자유롭게 스타일링할 수 있도록 했다 (핫시티 서울 트렌드-‘강남 디자인 모티프로 삼은 호텔 / 마침내 한국서 만나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총아안다즈 서울 강남).


| 커뮤니케이션

마지막으로 이태원 길거리에서 밤톨 인형 탈을 주문 제작해 쓰고 전단지를 나눠주던 '박새로이'의 전근대적 방식에서 인플루언서인 조이서의 SNS를 이용하여 '단밤'의 스토리를 공유하고, 쌍방향의 소통과 팬 서비스를 통해 긍정적인 구전효과는 물론이고 효과적인 홍보 마케팅을 진행하다.

JTBC '이태원 클라쓰' 중 조이서의 SNS를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 모습

또한 브랜드가 고객과 소통하는데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는 직원의 고객 서비스 태도이다. 오픈 당시에는 국물 안주에 손이 담긴 채 서빙을 하기도 하고 친절함보다는 뻣뻣한 직원의 태도가 걱정스러웠는데, 이 또한 드라마틱하게 바꾼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관심사와 연관이 있는 스토리가 있어 더 재밌게 정주행 할 수 있었던 '이태원 클라쓰'. 검색해보니 웹툰의 원작자가 이태원에 '꿀밤 (웹툰에서의 포차명)'을 오픈했다는 내용이 있다. 인테리어 콘셉트이며 메뉴도 드라마에 나오는 그대로로 선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방문해보고 싶다. 특히 시그니쳐 메뉴로 소개됐던 순두부찌개는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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