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야

by 징계
교집합

나는 경제적인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아들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출생아 기준 월평균 양육비는 1명당 118만 9000원이라고 한다. 26세까지 총 양육비가 3억 7천만 원이 넘는 셈이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교육 비용이라고 한다. 나는 이 사교육이 팽배한 한국에서 자식 둘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빠로서 그리고 앞선 시대를 만들어 온 어른으로써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아들에게 아빠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어 주기로.


친구가 되기 위한 첫 미션은 눈높이를 맞추는 거였다. 나는 정신연령이 그렇게 높지 않다. 그리고 항상 동심을 유지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황이 잘 들어맞게도 당시 아들은 7살이었지만 꽤나 조숙했다. 항상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눈높이를 맞추는 첫 번째 미션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두 번째 미션은 공통된 흥밋거리를 찾는 거였다. 내가 아빠로서가 아닌 친구로서 아들과 같이 놀기 위해서는 아들뿐만 아니라 나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필요했다.


처음 시도한 것은 스케이트보드였다. 어렸을 때는 곧잘 탔던 나지만,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건가? 허리도 안 좋고, 내가 힘들어서 이건 포기했다. 두 번째는 복싱이었다.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지만, 뭔가 전문성을 요하는 것 같아 진입 장벽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다이어트로도 많이 배우는 듯해서 도전해 보았다. 이건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들은 복싱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나 역시 단기간에 탈일반인, 반프로 소리를 들을 정도로 흥미를 갖고 배웠다. 특히나 아들은 나랑 스파링 하면서 나를 사정없이 때리는 걸 좋아했다. 스트레스가 확 풀린 단다. 7살 배기 인생의 스트레스는 굉장한 아픔으로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 됐다. 복싱 천재 맞는 것 같다. 나는 아빠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이 되었다.


복싱 하나로는 부족해서 세 번째로 시도한 것은 인라인 스케이트였다. 스케이트보드보다는 내 안 좋은 허리에 무리가 덜 갈 것 같고, 아들내미도 인라인을 신을 수 있는 발 사이즈가 되어서 시작해 보았다. 대성공이다. 우리는 올림픽 공원과 달곶이 스포츠 공원을 매주 갈 정도로 잘 맞는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더위까지 찾아오자 밖에서 두 시간 이상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는 힘들었다. 인도어에서 할 수 있는 취미가 하나 더 필요했다.


요즘 아이들은 집에서 여가시간 대부분을 유튜브 시청이나 게임으로 보낸다. 아마도 모든 부모들은 이를 제재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끊임없는 관심과 서치가 필요하다. 당시 바이트 초이카라는 모터로 움직이는 장난감 자동차가 유초등생 사이에서 유행 중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유초등생 장난감으로는 내가 아들내미의 친구가 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내가 그다지 관심이 끌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남 스타필드에서 쇼핑을 하다가 타미야 매장을 발견했다. 내가 소싯적 가지고 놀던 타미야 모터 자동차. 갑자기 동심과 추억이 소르륵 내 감성을 간지렀다.


“아들, 이거 사줄까?”


“어.”


“너는 거절하는 법을 몰라.”


매장 안에 들어가자 옛 추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송파구 오금동 어디 즈음에 자리 잡고 있던 ‘신일 과학’이라는 성인 완구(프라모델, RC카, 모터자동차, BB탄 총, 등등) 전문 매장이 있었다. 나는 신일 과학에서 타미야 모터 자동차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 설치되어 있던 트랙에서 친구들과 경주를 하며 승부욕을 배웠고, 그 승부욕 덕분에 친구들과의 많은 추억의 일기가 쌓이게 되었었다.


옛 추억을 뒤로하고 아들내미와 열심히 차를 골랐다. 강산이 3번은 바뀌었을 시간이 지난 터라 나도 뭘 사야 할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서 매장 직원에게 물었다.


“얘가 7살인데, 저랑 같이 취미로 하려고 하거든요. 추천 좀 해주세요.”


“타미야 모터자동차 처음이세요?”


“저는 옛날에 좀 했었죠. 한… 30년... 전 즈.. 음…”


“운전도 30년 이상 안 하면 면허 다시 따야 된다고 봐야 돼요. 여기 이 섹션에서 마음에 드시는 거 아무거나 골라서 사시면 돼요.”


무척이나 무성의한 대답이었지만 오히려 신났다. 처음부터 라는 느낌과 감정이 다시 나를 어린 시절의 뽀송한 나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각자가 맘에 드는 차를 구매하고 집으로 향했다. 매장에서 가지고 온 타미야 자동차 브로슈어를 보면서 아들은 다음엔 이거 사겠다 저거 사겠다 하며 신이 나 있었다. 나 역시도 아들내미와 똑같은 마음으로 신이 나 있었다. 물론 나는 아주 어른스럽게 거드름 가득한 모습으로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미션을 성공으로 이끄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인간관계의 문제 해결은 교집합에 있다. 친구들과 저녁을 뭘 먹을지 결정하는 일도, 연인과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는 일도, 업무 상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일 역시도 교집합을 찾는 일이다. 내 사고의 폭이 좁아진다면 교집합을 찾기란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고의 폭을 넓힌다면 상대방이 누구이건 어떤 상황이건 간에 교집합을 찾아내기가 수월해진다. 내가 만일 40대의 아빠로서 만 생각했다면, 아들과의 취미 공유는 힘들었을 것이다. 7살, 10살, 12살의 철없는 남자아이, 최재훈이 있었기에 나는 생각의 카테고리를 넓힐 수 있었다. 과거의 나 자신을 지금과는 다른 나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한켠에서 내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주춧돌로 생각한다면 사고의 폭은 굉장히 넓어질 것이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들은 촌스럽고 유치한 것이 아니다. 빛바랜 아름다움인 것이다.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어린 시절의 나

꿈을 향해 달리다 현실에 부딪혔다

지금의 나


일어나 웃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 웃음 가득 추억 뿐

힘겨웠던 순간도

달콤한 안주거리

나는 오늘도 추억이 좋다

힘들었던 하루 일과 쓴 술 한 잔

달콤한 추억 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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