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by 징계
나를 위한 기쁨


미국 생활에서 참 신기하면서도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인사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되면 서로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길을 걷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스탠딩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웨스턴 스타일의 바에서는 캐주얼 한 인사와 대화로 시작해서 결국 우리는 모두 친구 스타일이 된다. 정말 좋은 것은 이 인사가 가식이 없다는 거다.

왜 미국 사람들은 지극히도 개인주의적이면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걸까? 나는 이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홈스테이(하숙집) 할머니, 커니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내 마음이 기쁘고 행복해서.”


그들의 인사는 마음에서 나오는 기쁨과 행복의 표현인 거다. ‘나는 지금 행복하고 너를 만나 반갑다. 비록 우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지만 너에게 나의 기쁨을 전달하고 싶다. 그러니 우리 서로 반갑게 인사하자.’ 참 멋지다. 커니의 대답에서 재미있는 포인트는 기쁨과 행복의 주체가 ‘나’라는 점이다. 내가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인사를 하는 내가 기뻐서, 그리고 내가 기쁘기 위해서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교적 사고방식에서는 주체가 ‘너’가 된다. 너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인사한다. 네가 나의 윗사람이니까 인사한다. 너의 마음과 기분을 생각해서 내가 인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예절 문화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들에게 본인 스스로가 즐거운 인사를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다섯 살 때부터 낯선 사람이지만 고마우신 분들에게 인사를 꼬박꼬박 하도록 가르쳤다. 예를 들면 경비원 아저씨들, 택배 배송원들, 음식점 점원들에게 항상 먼저 인사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도록 가르쳤다. 제법 인사가 익숙해진 듯했다. 그래서 이번엔 같은 아파트 주민인 어른들이나 형, 누나들에게 먼저 웃으면 인사를 해보라고 했다. 앞선 교육의 효과인지 아들은 스스럼없이 인사를 잘했다. 그렇게 7살이 되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까지 나누게 되었다. 하루는 아들과 주말에 운동을 하고 집에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60대 중반의 노신사가 타셨다.


“안녕하세요.” 하고 아들이 크게 인사했다.


“어, 그래. 안녕? 왜 이렇게 땀에 졌었어?”


“아빠랑 복싱하고 축구하고 집에 가는 중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좋은데 많이 놀러 가지도 못하고 힘들지? 더우니까 아빠랑 이걸로 아이스크림 사 먹어.”라고 하시며 만 원 지폐 한 장을 꺼내셨다.


아들과 나는 사양했지만, 노신사의 마지막 한마디에 우리는 감사하다며 돈을 받았다. 그 한마디는

“우리 손주도 나한테 이렇듯 반갑게 인사해 주지 않는데, 너무 고마워서 그래.”였다. 조금 서글펐다.


그날 집에서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어른들한테 인사하니까 어른들이 좋아하시지?”


“응.”


“그러니까 아들 기분은 어때?”


“좋아.”


“아들이 먼저 인사하니까 아까 할아버지가 용돈도 주셨지?”


“응, 내가 인사해줘서 고맙다고 주셨잖아.”


“처음 그 할아버지한테 인사할 때 아들 기분은 어땠어?”


“아빠랑 운동하고 나서 기분 좋았어. 그래서 인사도 기분 좋게 했어.”


“아들이 기분이 좋으니까 기쁘게 인사하고, 할아버지도 기분 좋으셨고, 그래서 아들은 용돈도 받고 더 기분 좋아졌지?”


“응.”


“아들, 인사라는 건 그런 거야. 아들이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하면 상대방도 기쁘게 인사를 해 줄 거고, 그러면 그 기쁨은 두 배가 돼서 아들한테 돌아오는 거야. 인사하는 상대방이 누구냐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들 마음이 중요한 거야. 누구든지 만나면 기쁘게 인사하고 내 마음이 기쁘면 그걸로 좋은 거야. 알겠지?”


“응, 알겠어”




만나서 반갑다

고마운 내 마음아

우리 함께 웃자

행복한 내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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