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 동료 두 명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광고 회사 촬영 팀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퇴사 후 개인 사업자로 각자 스튜디오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한 명은 프로필 촬영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제품 촬영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분야는 달랐지만 고충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그 고충들에 대한 이야기는 클라이언트의 뒷담화로 이어졌다. 프로필 촬영을 하는 친구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개인 고객들에게 무시와 갑질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제품 스튜디오를 하는 친구는 브랜드를 등에 업은 클라이언트의 기세 등등 한 갑질을 당했다. 갑질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화두 중 하나이다.
나는 20년 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갑질을 경험해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나는 권력 기관별로 봤을 때 갑질의 심각성이 높은 정치권이나 대기업에 속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또한 사회관계 별로 봤을 때도 본사와 대리점, 소비자와 감정 노동자,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관계에 놓여 있지도 않다. 내 경험이 모든 상황을 대변해 줄 수는 없다. 내가 갑질을 당해 보지 않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라는 인간의 아주 좁은 사회 망 속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얄팍한 자존감일 뿐이다. 하지만 이 자존감이야 말로 나 스스로가 갑질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패션 광고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LG패션(현 LF)을 선임 팀장으로부터 인수인계받고 처음 룩북 촬영을 하는 날이었다. LG패션 본사 22층에서 촬영을 해야 했던 터라, 지하에 주차를 하고 촬영 장비를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이를 본 LG 패션 측 여직원들이 무거운 촬영 장비를 같이 옮겨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촬영장에서 시안을 보던 LG패션 여자 과장이 말했다.
“내가 짐 들고 들어 올 때는 한 번도 도와준 적 없던 애들이 왜 이러는 거야? 나도 해야 돼?”
그러더니 그분 역시 짐을 나르는 것이 아닌가. 인수인계 과정에서 들은 바로는 그 과장은 갑질을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커피 심부름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회사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할 때에도 실내 흡연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들은 바와는 다르게 내게는 의외로 친절했고, 갑질은 없었다. 나중에 그 과장과 친해져 사석에서 얘기를 들으니, 직원들이 내가 머리도 빡빡 밀고 인상이 험악해 보여서 왠지 나를 도와줘야 일할 때 편할 것 같아서 도와줬다고 한다. 나는 내가 귀여운 인상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 과장 역시 첫날 내 인상을 보고 보통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그날 이후 내 인상에 대해 신경이 쓰여서 알 없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어떤 미팅을 가건, 어떤 촬영을 가건 클라이언트들은 내가 명함을 내밀기도 전에 내가 포토그래퍼라는 걸 알았다. 옷차림도 전략이라 했던가. 반 삭발 헤어스타일에 알 없는 안경, 그리고 나쁘지 않은 패션 센스는 내 이미지를 미적 감각이 넘치는 예술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조금씩 경력이 쌓이자, 내 한마디는 비주얼 작업의 정답이 되었다. 이후 나는 그런 클라이언트들의 기대감에 충족하기 위해 더욱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외형이 만들어 낸 내적 결과물이었다.
하루는 남성복 광고 촬영 진행에 있어 클라이언트가 부당한 요구를 했다. 나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계약 내용과 달랐던 터라 원하는 대로 진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클라이언트는 예전에 진행했던 다른 포토그래퍼들을 운운하며 그때는 이렇게 진행했다고 막무가내였다. 나는 그럼 그 팀에게 연락해서 그들과 진행하라고 했고, 손해에 관련해서는 계약서 내용을 보고 추후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말했다. 나는 촬영을 스톱시키고, 직원들에게 장비를 철수시켰다. 독단적 결정이었다. 무리수라는 걸 알았지만, 회사의 단기적인 이익 문제보다는 함께 일을 진행하던 직원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바로 회사에 보고를 했다. 우리 회사 대표님은 잘못된 결정은 아니지만 다음부터는 먼저 보고를 하고 결정을 내리라는 말을 하고 끊었다. 클라이언트 역시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내게 와서 사과를 했다. 본인이 계약 내용을 잘못 알았고, 미안하다며 기존 방향으로 진행해 달라고 했다. 일은 모두가 만족할 결과물을 만들고 끝이 났다. 물론 이후에도 이 클라이언트와는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 나갔다.
내 분야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경험이 만들어 준 자신감이 나로 하여금 이러한 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이 일이 아니어도 우리 회사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내 일에 대한 확실한 신념으로 이어졌다. 그 자신감과 신념이 내실을 탄탄하게 다져주어 나 스스로가 강할 수 있는 자존감을 갖게 해 주었다. 연쇄 작용이다.
우리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가해자로부터 원인을 찾고, 그에 대한 처벌을 요구한다.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한다면 지탄받는 것이 당연하다.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 보자. 가해자를 처벌함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를 때린 사람이 감옥에 간들 다른 사람이 나를 때리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누구도 감히 때릴 수 없는 사람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 개개인이 이 거대한 사회의 예측 불가한 전반적 갑질 문제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사회이다. 내가 바뀐다면 내 사회는 바뀐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나를 먼저 바꾸려 노력해 보자.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強)은 영화 황비홍(1991)의 주제곡으로 ‘남자는 마땅히 스스로 강해야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황비홍의 시대적, 주제적 배경으로 봤을 때 남자란 표현은 성 평등 사회에서 이해 범위 안에 있다. 하지만 비단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우리는 마땅히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흔히들 계급장 떼고 붙어 보자는 말을 한다. 남자든 여자든 계급장 떼고 붙어 볼 자신감만 있다면 갑질로부터 충분히 나를 보호할 수 있다. 자신감은 자존감으로 이어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