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징계
sp_0640_1.jpg 계절의 뒷모습

글 쓰는 사진가 김홍희 작가님은 말했다. ‘봄 속에 있어도 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의 봄은 아직 살아 있는가?’


예전에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41살부터 10년 주기로 대복이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41살에 실직을 했다. 혹시나 만 나이 41살인가 해서 2년을 기다렸다. 재취업은 했지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의아했지만 그냥 살아갈 수밖에. 잔잔한 눈이 오던 어느 겨울날 친구와 둘이 술 한잔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내 사주에 대한 푸념을 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너는 지금 대복 속에 살고 있는 거야. 여우 같은 마누라 있지. 토끼 같은 아들 있지. 엄마 건강하시지. 전세 지만 따뜻한 집 있지. 외제차 끌고 다녀요. 직장 생활 잘하고 있지. 뭐가 복이 없는 건데? 나 봐라. 결혼도 못해. 투석받는 홀어머니 모셔. 불규칙한 프리랜서 수입에 엄마 집에 캥거루족으로 살고 있잖아. 뭘 더 바라는 거야?”

행복의 기준은 뭘까? 나 스스로가 기준점을 정하고 그 포인트를 넘게 되는 순간 나는 행복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기준점은 물질적인 평가나 명확한 수치화가 가능해야 한다. 연봉 1억? 2억?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서 정해야 하나? 하남시 집값이 좋을까? 강남 집값이 기준점으로는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행복의 기준 포인트를 넘었다면 그 행복은 유지되는 것일까? 행복 유지 기간도 산정해 놔야 할까?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분명히 업데이트가 필요한 부분이다. 애매모호할 뿐 아니라 흐뭇함이라는 표현은 행복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소박한 듯하다. 인간의 일생의 목표에 가까운 행복이 고작 흐뭇함 이라니. 하지만 의미를 되짚어 봤을 때 ‘충분한’ 만족을 느끼어 ‘고작’ 흐뭇하다 는 표현은 행복을 설명하기에 완벽한 문장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을 느끼는 순간들이 수없이 많다. 게임에서 이겼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를 때, 새 옷을 샀을 때, 시험을 잘 봤을 때,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받았을 때, 그리고 심지어는 참아왔던 소변을 시원하게 해결할 때도 우리는 충분한 만족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행복을 갈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충분한 만족을 ‘고작’ 흐뭇함 정도로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전을 만들 때 이미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삶은 무수히 많은 충분한 만족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만족들은 사전에서 의미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단지 내가 행복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뿐이고, 내 삶에서 그리고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할 행복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었을 뿐이다. 행복 속에 있어도 행복을 모르는 이에게는 행복은 오지 않는 꿈일 뿐이다. 나는 어제도 행복했고,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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