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by 징계
wt_0651_1.jpg 겨울이 있기에

겨울은 따뜻하고, 조용하다. 내가 느끼는 겨울의 이미지다. 단순히 내가 느끼는 겨울의 이미지만은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눈은 흡음재 역할을 해서 소리를 막아주고, 소리 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바꾼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은 따뜻하고, 조용하다. 하지만 철없던 시절의 나에게 눈은 추위를 막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겨울이 되면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았다. 겨울이 되면 나는 곰처럼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곰처럼 지내기에는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학창 시절엔 연애도 해야 했고, 군복무 시절에는 대민 지원 봉사도 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 일들 속에는 겨울을 온화하게 만들어 줄 많은 기제들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자나요. 일 년 중 우리 모두 조금 더 친절하게 행동하고, 조금 더 쉽사리 웃을 수 있는 생동감이 넘치는 밤입니다.’ 영화, 스크루지(1988)의 대사다. 어느 순간 나는 겨울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각자의 방식으로 온기를 나눈다. 누군가는 연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따듯한 코트 주머니 속으로 가져 감으로. 누군가는 연탄을 한 아름 등에 짊어지고 굽이굽이 언덕을 오름으로. 누군가는 빨간 구세군 냄비 속에 가슴에서 꺼낸 구깃구깃한 지폐를 넣음으로. 이러한 상황들은 감정의 이미지 화를 통해 겨울만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속 따뜻한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 겨울이면 구세군 냄비가 보일 때마다 작게나마 도움의 마음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겨울이 조금씩 활동적이 되어갔다. 그리고 내 마음도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추운 새해 아침이었다. 가족들과 떡국을 먹고 주전부리를 사려고 아들과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다다를 때 즈음 길 건너 소방서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쉬고 있는 이 새해 아침에도 근무를 하고 있을 소방관들이 떠올랐다. 아들에게도 포근한 겨울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들, 우리 각자 비타 500 한 박스씩 두 박스 사서 소방관 아저씨들 가져다 드릴까?”


“좋아! 나 지갑 가지고 왔어.”


다행히 아들은 흔쾌히 수락했고, 비타 500을 두 박스 사서 소방서로 향했다. 길을 건너며, 나는 아들에게 직접 비용을 지불해서 마음을 전달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 한 박스를 사게 했다고 설명했다. 아들은 용돈 쓰는 게 전혀 아깝지 않다고 얘기했다. 참 고마웠다. 소방서에 도착해서 호출 벨을 누르자 젊은 소방관 셋이 뛰어 내려왔다. 식사를 하고 있었던 듯했다. 음료를 건네자 그들은 받으면 안 된다고 극구 사양하려 했지만, 우리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음료를 받아 주었다. 김영란 법에 의해, 공무원이나 공직자들이 감사의 표현도 쉽게 받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찝찝했다. 하지만 김영란 법의 정식 명칭은 청탁 금지 법이다. 우리는 청탁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았고, 법에 명시된 금액을 초과하지도 않았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리고 소방관들에게도 겨울의 따스한 이미지 한 점을 선물한 것 같아 뿌듯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2015)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겨울의 추위는 힘들지만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음식도 있다.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겨울이란, 따뜻한 마음의 김장을 하는 소중한 조미료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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