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TV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록 밴드들이 경합을 벌이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학창 시절 록음악을 좋아했던 지라 추억에 젖어들기 좋았다. 그 순간 한 방청객의 모습이 비쳤다. 전인권 밴드의 음악을 듣던 그 여성 방청객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괜스레 나까지 눈시울이 붉어졌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흘렀다.
무엇 때문일까? 거칠지만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주는 울림 때문일까? 강렬하지만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을 만드는 연주가 주는 사색의 시간 때문일까? 서정적이지만 인생을 담은 직설적인 가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인가? 아니면 이 음악이 존재했던 세월 속 내 삶의 추억 때문일까? 알 길이 없었다. 그 순간의 그 개개인의 감정을 누가 이해하고 해석해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음악이 주는 울림은 비주얼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즈음 아이돌 음악을 듣는 아이들 역시 그 방청객의 입장이 되고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음악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 지금의 아이돌 음악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사의 안정된 연습생 시스템과 거침없는 투자를 통한 기획력으로 케이팝 아이돌의 가창력과 댄스 퍼포먼스는 상향 평준화 되었고, 케이팝의 글로벌한 인기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음악으로 인정받아가는 현실에 나 같은 일반인 나부랭이가 감히 평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듯 아이돌의 상업적 가치가 높아짐으로 인해 장르의 다양성이 결여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댄스와 퍼포먼스 위주의 음악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고, 하이 퍼포먼스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연령대 역시 높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흔히들 이런 표현을 한다. 아이돌 외모다. 완전 아이돌 같다. 무슨 뜻일까? 단순하다. 얼굴이 작고 예쁘고 잘생겼다는 뜻이다. 기획사들은 아이돌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경쟁력을 높이고 빠른 성공을 위해 예쁘고 잘생긴 연습생들을 키워나간다. 많은 기획사들은 이를 위해 계약 조건에 성형이라는 조항을 넣는다고 한다. 현시대의 음악이란 개인의 아이덴티티 마저 바꿀 만큼 비주얼에 치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곡의 지속적 가치는 어떠할까? 한 조사에 따르면 음원차트에서 월평균 17.5곡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한 곡당 2일이 안 되는 기간이다. 예전 90년대 가수들이 14주 연속 1위를 하던 시대에 빗대어 보면 엄청난 격차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음악이 얼마나 소모적 가치로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유행에 민감한 연령층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몇 주씩 듣고 있으면 트렌드에 뒤처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의 발매를 기다리며 설레어했었다. 그 음반을 사기 위해 군것질도 안 해가며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았다. 그리고 설렘 가득 구매한 그 음반을 몇 달씩 들으며 가사를 외우던 기억이 리듬처럼 남아 있다. 이 추억 속 아름다운 정서적 멜로디를 내 아이에게 느끼게 하고 싶다. 나는 마음을 두드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 아닌 눈요깃거리에 상업적 소비를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 자랄 내 아이의 감정이 메마르고 성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각적인 화려함에 매료되어 음악적 본질인 소리와 리듬이라는 청각적 상호작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의 풍요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릴 수 있는 방청객이 되었으면 한다.
음악 (音樂) _ noun 음악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