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고인 물이 금방이라도 넘쳐흘러 울어버릴 것 같은 날이었다. 아침 공기가 꽤나 찼다. 여느 보통날처럼 나는 출근 지하철을 탔다. 나는 전날 중고로 구매한 넥스트 1집 카세트테이프를 소니 워크맨에 꽂아서 들으며 서 있었다. 불편하고, 손이 조금 더 많이 가는 아날로그적 생활은 오히려 내게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준다. 만일 내가 핸드폰을 들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면, 나는 고개를 작은 화면 속에 처박은 채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출근 시간을 위로해 줄 영상을 고르는 데에만 최소 10분은 허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음악 3곡과 함께 내가 사는 세상을 본다. 작은 화면 속이 아닌 이 넓은 세상, 내가 존재하는 진짜 공간 말이다.
지하철 안에서 나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내가 탄 지하철 칸의 모든 승객들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게 편했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대중적인 수단이었다. 나만의 바운더리를 만들고 그 안에 스스로 고립되어 외로운 도시인으로 사는 것이 익숙하고 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핸드폰은 세계를 연결하며 수없이 많은 정보들을 제공한다. 충분히 중독에 빠질 만한 기계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중독이 아닐까 싶다. 핸드폰 중독은 가족 관계나 연인 관계를 소원하게 하는 사회적 이슈로 매스컴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실질적 관계에서의 대화 단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은 어땠지? 아버지 세대 때의 만원 지하철, 만원 버스는 어땠을까? 고개 숙여 앞에 있는 다른 승객의 시선을 외면할 수 있는 핑곗거리가 되어 줄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그때는 어땠을까? 생판 모르는 사람을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있다면? 민망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떤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했을까? 나 역시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지나왔다. 내 삶의 타임라인 속 그 시절은 꽤나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을 대변할 수 있는 곡이 자자의 ‘버스 안에서’가 아닐까 싶다. 친구들과 여학생들을 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다른 학교 남학생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하며 삶의 추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SNS 속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삶이 아닌, 순전히 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한 삶이었다.
어렴풋한 기억 속 내 삶은 넓은 세상 속에 있었다. 작은 화면 속 사람들을 보며 사는 게 아닌 내가 사는 세상 속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가짜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드는 실제의 이야기를 느끼며 사는 삶이 아니었다. SNS 속 팔로워 수에 집착하는 삶이 아닌 함께 호흡하고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낭만 있는 삶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을 나오자 비가 오고 있었다. 이어폰에서는 넥스트의 도시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산을 펼치며 무표정한 얼굴로 회사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서글프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SNS 속 친구들이 아닌 내 삶 속에 숨결이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손가락 타이핑으로 전해 듣는 안부가 아닌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보고 싶다.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