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같이 보내보아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일정 시간을 수반하지 않고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는 것은 때때로 더 나은 관계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쉽게 판단하고 그 판단을 그 상대방이나 혹은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폭력까지도 될 수 있다.
<마르타의 일> 을 읽으면서,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련의 일들 속에서어떤 상대를 본인이 생각하고 싶은, 정확히는 '생각해버리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그 상대에게 말해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상대를 겪어보지도 않고,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이미지나 말투 등 일부의 면들을 가지고 쉽게 판단하는 사람이 얼마나 미성숙한지도, 그 쉬이 내려버린 판단을 들어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인지 느꼈다.
본인이 정말로 어떤 사람을 알고자 하는 진심없이 일단은 자기가 편한대로 생각해버리고 그것을 말해버리는 경우에, 그것이 소위 '가스라이팅'까지 될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본인에게 내려진 그 판단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은지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일부는 아주 고독하고 긴, 해결되지 않은 싸움을 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억울하거나 답답한 감정을 느끼며 그 감정과 싸우고, 그 판단이 가십처럼 번지게 되면 더더욱 싸움의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판단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소설 <마르타의 일>에서 리아는 다른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떤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불합리한 피해를 받았다. 리아의 예쁘장한 외모,사람들에게 경계심없이 다가가고 마음을 열며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성격, 봉사활동을 자주 하는 모습은 리아 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실제 특징이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들을 가지고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예쁜 외모와 착한 척하는 성격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얻고 이를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으로,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녀의 ~한 점들에 이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요즘과 같이 SNS나 인터넷으로 이야기(특히나 사람의 이미지에 대한 소비)를 퍼다 나르는 시기에 그녀는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테다.
언니인 경아와의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듯 리아는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자존감이 낮은 편이기에 본인에 대한 그런 부정적인 평가들을 헛소리라고 치부하며 싸우지 못하고 다소 억울하더라도 정말로 내가 그런 면이 있나,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인내하는 것을 택하게 됐다. 결국은 나쁜 사람한테 휘둘려 죽음까지 반 강제적으로 선택하고야만 말았다. 리아가 바보같이 착하기에 이용당한 것일까?
리아는 본인에 대한 억울한 가십 속에서 무력감을 이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언니 경아의 복수극은 시원했지만, 현실감이 없이 느껴졌다.
정말로 소설같았달까. 실제 저런 상황에서는 그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복수를 할 대상이 뚜렷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상황 속에서 당사자를 괴롭히는 것은 나에 대한 틀린 판단, 즉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상대를 처벌(복수)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될까? 가십의 근원지인 사람을 만나, 그사람이 어떤 나쁜 의도로 나에 대해 그런 악의있는 소문을 낸것인지 물어봐서 그 의도를 알게된들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 혹은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오해한 것이라면, 그것이 오해라고 해명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안해질까? 내 해명을 듣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한 것인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은 본인이 내뱉은 말로 얼마나 상대방이 괴로워하는지 생각조차 않는다. 쉽게 내뱉고 잊어버리는, 오락과 같은 이야기이기에.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쉽게 잊어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다른 이야기도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쉽게 내뱉은 그 판단의 말을 마음속에 담고 그 무력감 속에서 지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시원하지 못한 보복에 대해서, 그 멍울진 괴로움에 대해서, 그것이 어쩌면 개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괴로움 중 하나가 아닐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댓글들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택하는 일부 연예인들도 그런 맥락에서 괴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도 심각하진 않지만 그런 일을 겪어본 적 있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나의 일부 행동들에 대해서 쉽게 어떤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비판하듯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갑자기' '해명'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고 시간이 흘러도 그 상황에서의 무력감을 쉽게 잊지 못했다.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원하게 이것이 내 잘못이고 이것은 니 잘못이라고 따질 수도 없었다. 싸울 대상이 불분명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에 대해 공감해야할지 무작정 아니라고 오해라고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비판들 중 일부는 '그렇게 생각할 만 했다, 좀 더 나은 나를 위해 나도 신경써야겠다' 라고 정리되는 것도 있으나, 일부는 전혀 합리적이지도 의미있지도 않은 말이었다.
이렇게 나에 대한 평가의 말이, 다소간이나마 의미가 있는 비판인지 아닌지에 대해 정리되려면 나름 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존감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 또한 이렇게 상대를 쉽게 판단하고 어떤 특정한 행동들 몇가지로 그 사람을 규정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과 뒤엉켜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좋은점만 볼 순 없고, 빠르게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그에 맞게 그를 대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해낸다면 내 마음도 덜 다치고 사회생활 할 때에도 효율적이다.
그러나, 최소한 자주 만나야 하거나 호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일부 모습이나 이미지를 가지고 쉽게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쉽게 퍼다나르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겠다. 누구를 쉽게 판단하여 단점을 쉽게 입밖으로 꺼내지 않겠다고, 내가 사람들의 특징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파악하였다고 속단하고 그를 대한다면 오히려 상처를 더 받을 누군가도 있을 수 있으니 더 조심해야겠다고, 한 사람에게라도 상처를 주었다면 나도 그 가해자중 한 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마르타의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상처의 정도와 그 영향력은 다른더라도,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그리하여 <누군가의 일>이 될 수 있는 일이다.